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위하여 - 안치환
jubila
2021. 10. 1. 17:04
위하여 - 안치환
![]() ![]() 위하여 안치환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목마른 세상이야 시원한 술한잔 그립다. 푸른던 오솔길 자꾸 멀어져가고 넥타일 풀어라 친구야. 앞만보고 달렸던 숨가쁘던 발걸음도 니가 있어 이렇게 내가 있어 이렇게 이 순간이 좋구나 친구야 후렴)x1 무정한 세월이야 구름처럼 흘러만 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 청춘에 꽃이 시들었구나.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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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희망이 돼야 합니다. 3·1운동 당시의 아픔을 노래할 수 있었지만 나와 조국, 민족에 대한 진취적이고 긍지를 주는 노래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수 안치환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발표한 음원 ‘백년의 함성’에 담은 스스로의 기대다. “100년 후를 생각해 우리 민족이 함께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지난 18일 서울 자택에서 안치환을 만났다. ‘백년의 함성’에 담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30년 넘게 가수로 활동하며 그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 대해 들었다. 안치환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고도 하고, ‘민중가수’ ‘운동권가수’로 불리는가 하면 ‘대중가수’ ‘국민가수’로 꼽히기도 한다. 한 가수에게 이렇게 많은 별칭이 붙은 것도 흥미롭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 싶을 만큼 진폭이 크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제는 그런 것(호칭)에 대해 초연해졌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색은 다양합니다. ‘솔아 솔아 푸르는 솔아’부터 ‘광야에서’ ‘철의 노동자’ 등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노래,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소금인형’ 등 인간애를 다룬 음악까지 다 제 노래이고, 제 모습입니다. 민중가수나 대중가수 등의 호칭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수 인생 32년 차인 그는 이제 어느 한곳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꿋꿋하게 계속 걷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를 가리키는 별칭이 많고, 본인은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으나 안치환 하면 ‘민중가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4·3 문화제 등 굵직한 사회 현안을 다루는 곳을 피하지 않았고, 2016년에는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지난해에는 제주 4·3 70주년 기념 ‘4월 동백’ 등 역사와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들을 꾸준히 선보였기 때문이다. ‘백년의 함성’의 함성 역시 이런 경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3·1운동,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올해 많은 행사가 열립니다. 뮤지션으로서 무엇인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소설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세상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에 관심을 가지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슬쩍슬쩍 끓다가 ‘백년의 함성’이 나왔습니다.” ‘백년의 함성’은 안치환이 기존에 발표한 곡과는 많이 다르다. 통기타 하나 걸쳐매고 하모니카 소리에 굵은 목소리로 힘있게, 또는 잔잔하게 부르던 그는 이번에 시종일관 힘찬 목소리로 노래한다. 통기타보다는 행진용 북인 마칭 스네어 드럼 소리가 노래 전반에 흐른다. 그는 또 노래로 권력가와 사회,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도 포함됐다. 문득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삶이 좀 편해졌는지 궁금해졌다. “권력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세상만 바라보며 옳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전두환정권 때부터 블랙리스트였습니다. 김영삼, 노무현 등 정권이 바뀐다고 변했을까요. 문재인정부라고 해서 좋아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애’ 역시 안치환이 자주 노래에 담은 관심사였다. 대표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비롯해 ‘고해’ ‘우리’ ‘떨림’ ‘내가 만일’ ‘사랑하게 되면’ 등에서 사랑과 삶에 대해 표현했다. “사람과 사랑, 삶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가수로서 당연합니다.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넓은 의미의 사랑을, 그리고 삶과 인생을 노래해야 합니다. 저 또한 삶과 사랑, 저항에 대해 노래했습니다. 그게 안치환의 색입니다.” 1986년 민중문화운동연합노래반 ‘새벽’을 통해 노래를 시작한 안치환은 1989년에 솔로로 데뷔했다. 30여년을 가수로 살아온 그는 “지루하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노래가 부족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성실한 뮤지션이었습니다. 오래전이지만 신선하고 ‘핫’한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핫’하길 바란다면 욕심이겠죠. 제가 갈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걸을 생각입니다. 노래 자체의 힘을 믿고 나를 지킬 방법을 찾아가겠습니다.” 공연장은 안치환에게 이런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올해 가을 개관을 목표로 공연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공연장은 서울 마포 연남동에 위치해 있다. “돌이켜보니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저 혼자, 또는 밴드와 함께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때죠.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그런 것들을 굳건히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연장은 젊은 가수들을 위한 공간으로도 제공할 겁니다.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계속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https://youtu.be/C2QCFLKtWi4 | Adventurer 승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