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샹송] Le Pont Mirabeau - Yvette Giraud

jubila 2022. 4. 24. 22:48

Le Pont Mirabeau - Yvette Giraud











Le Pont Mirabeau

Yvette Giraud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é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e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s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미라보 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G Apollinaire·1880~1918)가 1912년 2월에 발표했는데 5년 동안 연인관계였던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결별이 이 시를 낳았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물처럼’에서 보듯 시간의 덧없음과 사랑의 종말을 담고 있다.
마리 로랑생도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떠올리며 “버림받은 여자보다, 떠도는 여자보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것은 잊힌 여자”라고 한탄한 일화가 지금도 회자된다.
아폴리네르의 시는 근엄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고백하듯 쉽게 시를 썼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이 빗발치던 참호 속에서도 시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넓은 (시의) 밑천을 타고났다”는 말이 나온다. 스스로도 “내 시 한 편 한 편은 내 생애 일어난 사건들의 기념”이라고 말했었다.
시인은 가난한 방랑자였다. 은행의 하급직원, 출판사 보조원,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하며 20세부터 25세까지 네덜란드, 독일(라인 강변) 등지를 떠돌았다. 그런 보헤미안 기질이 어떤 이론이나 유파(流派)에 귀속되지 않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그러다 피카소, 마티스 같은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받아 시에 입체파 미술을 결부시키려 했고 이후에는 초현실주의 유파로 빠져들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e)’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가 아폴리네르다.

이베트 지로(Yvette Guraud)는 한국인과도 친숙한 여성 가수로, 본명은 이베 트 우롱이라 하며 1916년 9월 14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테 말코니 레코드 회사 의 타이피스트가 되어 일하는 동안 그 목소리의 매력을 인정받고 1945년 말에 첫 레코드를 취입했다. 이듬해 Mademoiselle Hortensia 를 방송에서 불러 히트시키고 이것이 그녀 의 별명이 되었다. 1952년 시인의 혼 으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1955년, 57년 에 극동에 와서 샹송 붐을 불러일으키고 그 후에도 거의 매년 해외 공연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