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e Love - Connie Francis
True Love Connie Francis Suntanned, windblown, honeymooners at last alone Feeling far above par, oh how lucky we are. While I give to you and you give to me True Love, True Love. So on and on it'll always be True Love, True Love. For you and I have a guardian angel on high with nothing to do but to give to you and to give to me love forever true. Yes to give to you and to give to me love forever true. Love forever true. 진실한 사랑 햇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날리고, 마침내 호젓하게 신혼여행자가 되었어요 너무 기분이 좋군요. 오 우리들은 참으로 운이 좋아요. 제가 진실한 사랑을 당신께 드리고 당신도 진실한 사랑을 제게 주시지요. 이렇게 계속 언제나 진실한 사랑이 있겠지요. 왜냐하면 당신과 나는 당신과 내게 영원히 진실한 사랑을 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한 분 수호천사가 계시니까요. 그레요 당신과 나는 당신과 내게 영원히 진실한 사랑을 주는 것 진실한 사랑을... |
1960년대에 팝, 발라드, 칸초네(canzone)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섭렵하며 수많은 히트 곡을 탄생시켰던 미국 가수 '코니 프랜시스'는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휘하였으며 11살 때에는 텔레비전의 어린이 노래 자랑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뉴어크 예술 고등학교(Newark Arts High School)에 입학한 코니 프랜시스는집이 벨빌(Belleville)로 이사함에 따라 벨빌 고등학교(Belleville High School)로 전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게 된다. 고교 시절에 코니 프랜시스는 노래 잘하는 소녀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으며 가끔 나이를 속이고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MGM'과 음반 계약을 맺고 싱글 음반 'Freddy'를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진학해서도 싱글 음반 발매를 통해 학업과 가수 활동을 병행하던 코니 프랜시스는 1958년에 발표한 싱글 'Who's Sorry Now'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되자 자신감을 얻고 가수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첫번째 히트 싱글, 'Who's Sorry Now' 이후 'Stupid Cupid(1958년 15위)', 'My Happiness(1958년 2위)', 'Lipstick on Your Collar(1959년 5위)', 'Among My Souvenirs(1959년 7위)', 'Mama(1960년 8위)'등의 싱글들을 발표하여 히트 시킨 코니 프랜시스는 1960년에 발표한 두 싱글 'Everybody's Somebody's Fool'과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을 연속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61년에는 'Where the Boys Are(4위)', 'Breakin' in a Brand New Broken Heart(7위)', 'Together(6위)', 'When the Boy in Your Arms(Is the Boy in Your Heart)(10위)'등의 히트 곡을 발표하였으며 1962년 1월에 발표한 싱글 '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로 또 다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게 된다. 코니 프랜시스는 'Second Hand Love(7위)'와 1962년 6월에 발표했던 싱글 'Vacation(9위)'로 인기를 이어갔지만 'Vacation' 이후에 발표한 곡들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에 진입시키지 못하였다. 더구나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가 1963년에 음반 'Please Please Me'로 팝계에 등장하게 되자 팝계의 판도가 바뀌게 되면서 이전의 명성을 되찾는데 실패하고 만다. 탁월한 가창력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시도했던 코니 프랜시스는 1974년에 불행한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그 사건은 1974년 11월 8일에 벌어졌던 일로써 투숙했던 모텔에서 외부 침입자로 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고였다 이 사고로 코니 프랜시스는 모텔 측에 보안상의 문제를 제기하여 3백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받기도 하였으나 이때의 충격으로 1981년 까지 7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하였다. |
Adventurer 승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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