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샹송] La Dernière Valse (The last waltz) - Mireille Mathieu

jubila 2020. 12. 26. 18:20

La Dernière Valse (The last waltz) - Mireille Mathieu



 

 



La Derniere Valse(The last waltz)


Mireille Mathieu



Le bal allait bientot se terminer

Devais-je m'en aller ou bien rester ?

L'orchestre allait jouer le tout dernier morceau

Mireille Mathieu La Derniere Valse Lyrics

Quand je t'ai vu passer pres de moi...

 

C'etait la derniere valse

Mon cœur n'etait plus sans amour

Ensemble cette valse,

Nous l'avons dansee pour toujours.

 

On s'est aime longtemps toujours plus fort

Nos joies nos peines avaient le meme accord

Et puis un jour j'ai vu changer tes yeux

Tu as brise mon cœur en disant "adieu".

 

 

C'etait la derniere valse

Mon cœur restait seul sans amour

Et pourtant cette valse,

aurait pu durer toujours

Ainsi va la vie, tout est bien fini

Il me reste une valse et mes larme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C'etait la derniere valse

Mon cœur restait seul sans amour

Et pourtant cette valse,

aurait pu durer toujour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C'etait la derniere valse

Mon cœur restait seul sans amour

Et pourtant cette valse,

aurait pu durer toujour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무도회가 곧 끝나 가네요.
내가 떠나야만 하나요. 아니면 이대로 머물러야 하나요?
오케스트라는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있었지요.
내 옆을 지나치던 당신을 보았을 때

 

마지막 왈츠 곡이었죠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이 왈츠 곡에 맞춰
우리는 계속 춤을 추었지요.


오랫동안 아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우리의 기쁨과 고통이 하나가 되어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당신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죠
당신은 안녕이라 말하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남겼지요


마지막 왈츠 곡은

언제까지 계속 흘러 나오겠지요
그렇게 삶은 흘러가고 모든 것이

잘 끝을 맺겠지요
나에게는 한 곡의 왈츠와 눈물만이 남은 채

 

마지막 왈츠 곡은 언제까지

계속 흘러 나오겠지요
그렇게 삶은 흘러가고 모든 것이

잘 끝을 맺겠지요
나에게는 한 곡의 왈츠와 눈물만이 남은 채

 

마지막 왈츠 곡이었죠
내 마음은 사랑이 떠나버린 채

외로이 남겨져 있지요
그래도 이 왈츠 곡은 언제까지

계속 흘러 나오겠지요












Mireille Mathieu


1946년 7월 22일 아비뇽에서 태어난 여성가수로, 13명 의 형제자매 중 맏딸 이다.
15세 때 아비뇽의 샹송 콘테스트에서 제1 위가 되었으며..
버클레이 레코드의 사장 에디 버 클레이에게 스카웃되어 1965년 12월 신인 콘테스트에 출연,
이듬해 66년 봄 데뷰 레코드 "사랑의 신조"가 대히트하고 일약 스타가 되었다. 목소리도 창법도 에디뜨 삐 아프와
비슷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스케일이 큰 실력의 소유자 이다.
Mireille Mathieu의 생은 마치 현대의 신데렐라 같은 동화였다.
그녀의 형제는 무려 14명이였다. 그 형제의 생활을 감당하기에 비석공이였던 그녀의 아버지 Roger씨의 수입으로는 많은 어려움이어서 형제들이 모두 함께 몇푼의 프랑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던 토막집은
수시로 비가 오고 물이 새는 소동을 금치못하는 생활의연속 이였다. 그녀의 재능은 어렸을때 부터 알려져
그녀가 처음으로 무대에 출연한 것은 4살때로 성당의 자정미사때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녀의 꿈은 Edith Piaf처럼 유명한 가수가 되는 거였다.
학교에서 그녀는 Edith Piaf가불러 유명해진 노래 "La vie en rose" <장미빛 인생)을 불렀다.
그녀가 학교를 다니던 과정서 그녀는 Laure Colliere,라는 선생에게 발탁되어
그녀의 강경한 사회적인 인격형성 지도를 비롯해 그녀의 성악가가 되는 길과 인생의 영향력을 받게된다.
이는 그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으로 만들게 되고 그녀의 사고는 노력 없이 얻을수 없다는 집념으로
노래에 전력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재능을 인정한Johnny Stark 라는 메니저는
그의 죽음 까지 그녀의 성공기를 함께 한다.

그녀가 19살때인 1965년 티브이방송의 프로그램 에서 그녀는 하루 사이에 애수에 젖은 깊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일약가수로서 성공을 한다. 그녀가 부른 Edith Piaf-Chansons인 "Jezabel" 같은 곡은
소녀 미렐레를 국제적인 명성의 가수로 만들고   Mireille Mathieu는
"새처럼 노래하는 아비뇽(Avignon)의 마드모아젤로 등장을 한다.
 
Mon credo" 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녀의 샹송모음집은 170만장의 판매를 보인다.
Mireille는 이로 프랑스의 노래하는 대사의 역할을 하게되며 그녀는 그녀의 모든 팬들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가수로 성장한다.
 
그녀는 불어 ,독어, 영어,이태리어,스페인어,러시아어  핀란드어에 중국어로 노래를 하는데 그의 공연은 세계적인
명한 가수 Jonny Carson, Danny Kaye, Tom Jones oder Dean Martin  같은이들과
공연을했고 서양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서 무대에선 가수였다.
Mireille Mathieu의 키는 아마 150cm정도 ,  까만 빛나는 눈동자에 까만 단발 머리형의 그녀의 노래를 듣노라면
빠질것 같은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 그녀가 부른 수많은 노래중에 역시는 피아프가 히트쳤던 장미빛 인생.
Une Femme Amoureuse. Babara streisand도 불렀던
Woman in Love 나 Pariser Tango 등등 ...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 하는 가수.
 








"이것이 아빠란다"


지영의 노래, 승부의 세월, 우리진상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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