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깐시온] De Cuerpo Entero (온전한 몸으로) - Violeta Parra

jubila 2021. 4. 11. 17:00

De Cuerpo Entero (온전한 몸으로) - Violeta Parra

 





De Cuerpo Entero
(온전한 몸으로)

Sung By
Violeta Parra



El humano esta formado
de un espiritu y un cuerpo
de un corazon que palpita
al son de los sentimientos.

Ay, no entiendo de amores
del alma sola
cuando el cuerpo es un rio
de bellas olas.

De bellas olas, si
que le dan vida
si falta un elemento
negra es la herida.

Comprende que te quiero
de cuerpo entero.


De cuerpo entero
온전한 몸으로

인간은 만들어졌네
영혼과 몸으로
영혼과 몸으로
감정의 박자에 맞추어뛰는
심장으로인간은 만들어졌네

아, 나는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 아, 아, 홀로 남은 영혼이여
육체가 강이라면
아, 아, 아, 아름다운 파도로 만들어졌네

나는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네
아, 아, 아, 홀로 남은 영혼이여
아름다운 파도로 그래
아, 아, 아, 사랑에 생명을 부여하네

거기에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아, 아, 아 그건 바로 쓰라린 상처이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
아, 아, 아, 온전한 몸으로













Violeta Parra

Violeta Parra(비올레따 빠라) 는 1917년 10월4일 칠레남부 '뉴브레'지방 시골마을 산까를로스에서 아주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폐병으로 죽고, 엄마는 삯바느질로 생계꾸리며 근근히 살았습니다.

Violeta Parra(비올레따 빠라) 는 집안을 돕기위해 오빠와 여동생들과 술집등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부모님, 동네 사람들한테 민요를 배웠고, 기타는 혼자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18살 즈음 산티아고로 홀로 상경하여 싸구려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빠인 니까노르 빠라가 제발 그런 가짜 노래좀 그만 부르고 시골 농부들이 스페인 사람들한테 받은 유산을 몇세기동안 불러온 진짜배기 노래를 공부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래서 1953년부터 미친듯이 칠레 전역을 다니면서 모든 민요를 다 채록하고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칠레의 진짜 민요와 삶을 알아가고, 그것을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탔고, 엄청난 재능과 열정으로 그것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곡을 창작하고, 유화를 그리고 도자기를 만들고, 천에 수를 놓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2차레 머물면서 64년도에는 중남미 사람으로선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루부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남미 최초의 화가이며 싱어송 라이터로 칠레의 국민적 음악가로 시인으로 추앙을 받는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였슴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동안엔 그녀가 무었보다도 사랑하였던 조국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유럽에 건너가서는 칠레를 소개하고 조국에 '민요의 전당'을 다했지만 젊은에술가들의 조그마한 지원만을 이끌어 냈을뿐 힘에겨워 했으며 주위의 몰이해로 더욱더 많은 경제적인어려움을 격으면서도 유팡끼와 마찬가지로 전국을 돌면서 민요를 채집하고, 수집한 노래를 레코드와 라디오를 통해 대중화 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60년도 즈음에 스위스에서 온 한 연하남자(질버트 파브르)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깊이 사랑했는데 나이차이도 많았고, 워낙 성격이 강해서 남자가 볼리비아로 떠나버립니다. 두번이나 남자를 붙잡으로 라빠스로 갔는데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남자는 곧 볼리비아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Gracias a la vida는 볼리비아에서 작곡하게 된 곡이고, 66년말 나온 Las ultimas canciones라는 마지막 음반에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었습니다.

67년 2월 5일 자신이 문화센터로 만든 천막에서 자살을 합니다. 실연은 자살 이유 중의 하나일 뿐, 자신의 인생에서 큰 계획이었던 이 문화센터가 실패하자 삶의 환멸을 느끼고 자살을 합니다. 이미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세번째 시도였습니다.

1917년 10월 4일 칠레 남부의 산 카를로에서 출생해 1967년 쉰 살때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눈물과 고통까지 감사 하고자고 노래했던 그녀였다.비올레따 빠라 Violeta Parra의 삶에는 항상 극단적인 것이 관통하고있었다. 일단 민요를 수집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녀는 가정을 비롯한 모든 것을 희생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열정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부당한 폭력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보았을 때는 온 몸을 던져 대항했다.연애 또한 일단 빠졌다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안았습니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 살던 광신 노동자나 농민속으로 파고들어 민요를 수집하면서 그들의 삶과 열악한 환경에 느낀 분노는 그녀로 하여금 공산당에 입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해 목표를 이루고야 말지만 그 대신 자신의 수입이 없어지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곤경에 빠져도 결코신경을 쓰지 않았다.실제로 비올레따빠라의 아들들은 제대로 정규교육도 받을수가 없었으며 빠라의 파리여행으로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못한 막내아들은 칠레에서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평가나 시선을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향해 평생을 달려갔던 빠라를 세상의 잣대만으로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나칠 정도의 순수함이 그녀의 정신세계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갔을 뿐, 순수한 열정이 피워낸 창조적인 재능은그녀의 시와 노래에서 빛을 보았으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감동의세계를 열어 놓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업적은 비올레따 빠라를 사랑과 연대를 주제로한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의 어머니로 기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Gracias a la vida(인생에 대한 감사) 는 비올레따 빠라의 대표곡으로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좌절하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가 충만한 누에바 깐시온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Adventurer
승부사
 

 

 

"이것이 아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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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hrFARWMfdg?list=RDUsUmxrw9-bQ

https://youtu.be/rcRgVSDq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