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Baroque

[동요] 따오기 - 조용필, 박수남, 선명회 합창단.

jubila 2023. 6. 20. 06:21

따오기 - 조용필, 박수남, 선명회 합창단.








  

따오기
한정동 작사 . 윤극영 작곡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듯이 잡힐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아버지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이 노래는 지금의 노년세대들이 어린 시절 무척이나 즐겨부르던 노래다. 국어 시간에도 작품 감상을 공부했고, 음악 시간에도 노래를 배웠다. <반달> <고향의 봄> <오빠 생각> 등과 더불어 유년시절의 추억을 대표하는 애창곡들이다.
향토적 
서정과 애상적인 가락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어린 마음에도 언제나 가슴뭉클하게 와닿곤 했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가신 것으로 표현해, 전쟁 직후 부모없는 아이들의 심금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땅에 많이 없는 따오기에 대한 아련한 유년의 추억만이 그리운 노래로 남아 있다.

한정동 글에 윤극영이 곡을 붙인 동요 <따오기>는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그 당시는 제목이
<당옥이>였고, 4련으로 된 동시였다.

윤극영의 곡으로 더 유명한 이 동요는 일제강점기때는 조선인의 애환을 노래했다고 해서 가창과 반포가
금지되었다.

따오기 우는 소리는 한없이 처량하다. 그것도 저녁놀이 질 무렵 시골 냇가에서 들이면 더욱 그렇다. 따오기 소리를 들으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르고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가신 나라는 어디에 있는 나라일까? 멀고 먼 해 돋는 나라이다.

이 동시에서 '달 돋는 나라' '별 돋는 나라'의 표현은 모두 '해돋는 나라를 음미해 씌어진 것이다. 즉 해, 달, 별이 돋는 그 나라는 모두가 같은 나라인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 있는나라이다. 어머니는 다시 오지 못올 나라로 가서 있다. 그래서 꿈에만 보는 어머니가 되었다. 주인공은 애절한 따오기 소리를 통해 다시 돌아오지 못할 나라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러한 상상의 세계를 넘어서 달나라로, 별나라로, 해나라로 날아가
꿈에만 보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쓴 이 동시가지금은 우리들 가슴을촉촉히 적시는 애절한 추억의 동요가 되었다.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니 따오기 노래처럼 그저 아련할 뿐이다.
 




▣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 동시 ▣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당옥당옥 당옥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곳이 어디이드뇨
내어머님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듯이 잡힐듯이 잡히지 않는
당옥당옥 당옥소리 구슬픈 소리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어머님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약한듯이 강한듯이 또 연한 듯이
당옥당옥 당옥소리 적막한 소리
흘러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어머님 가신 나라 별 돋는 나라



나도나도 소리소리 너 같을진대
달나라로 해나라로 또 별나라로
훨훨활활 떠다니며 꿈에만 보고
말못하는 어머님의 귀나 울릴걸







동요시인 한정동(1894~1976)
 

시인은 1894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평양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남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따오기가 당선되어 이때부터 그의 작가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초의 아동문학가다.

1950년 한국동란 때 월남해서 신문기자, 덕성여고 교사로 근무하였고 1968년 서울교육대학교가 주는
'고마우신 선생님'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시인이 1969년에 제정한 한정동아동문학상은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져 오고있다.

시인은 동요창작에만 일관하였고 동요로 일생을 마쳤다. 동요 따오기가 탄생한 1925년은 우리나라 동요의 개척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작품은 주로 민족적인 슬픔을 향토적인 색채로 표현하였고, 후기작품은 동심의 세계를 찬미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700여 편의 작품을 쓰면서 <따오기> <갈잎피리> <할미꽃> <가을> 등의 주옥편을 남겼다.

현재 경기도 시흥시 물왕저수지 근처에그의 묘지가있고, 그 
옆에 문인들이 세운 <따오기 노래비>가 있다.




윤극영 
(1903∼1988. 동요작가,작곡가)

 

1903년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출생
1917년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상록수>의 작가 심훈(沈熏)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국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에 입학해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얼마 후 성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음악학교 재학시절인 1922년 방정환·정순철 등과 함께 어린
이문화재단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를 작곡하면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다. 색동회의 회원인 그는 1924년 한국동요사에 빛나는 "반달"을 작곡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단체인 따리아회를 조직해 지도했다.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곡집 『반달』을 출간함과 동시에 같은 제목의 음반을 출반하였다.
1924년 <반달>을 비롯해 <설날>(까치까치 설날은~) <할미꽃> <고기잡이>등의 창작 동요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고드름> <따오기>등의 동요에 곡을 붙여 동요보급운동을 전개했다.

1956년 제1회 소파상을 수상했고, 1970년 국민훈장 목련장
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