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샹송]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 - Edith Piaf

jubila 2024. 4. 3. 13:57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 - Edith Piaf










Hymne A L`amour
(사랑의 찬가)

Edith Piaf

Et la terre peut bien s'ecrouler.
Peu m'importe si tu m'aimes
Je me fous du monde entier.
Tant que l'amour inondera mes matins,
Tant que mon corps fremira sous tes mains
Peu m'importent les grands problemes
Mon amour, puisque tu m'aimes
J'irais jusqu'au bout du monde.
Je me ferais teindre en blonde
Si tu me le demandaisJ'irais
decrocher la lune.
J'irais voler la fortune Si tu me le demandais
Je renierais ma patrie. Je renierais mes amis
Si tu me le demandais... On peut bien rire
de moi, Je ferais n'importe quoi
Si tu me le demandais
Si un jour, la vie t'arrache a moi,
Si tu meurs, que tu sois loin de moi
Peu m'importe, si tu m'aimes Car moi,
je mourrai aussi
Nous aurons pour nous l'eternite
Dans le bleu de toute l'immensite.
Dans le ciel, plus de problemes.
Mon amour, crois-tu qu'on s'aime
Dieu reunit ceux qui s'aiment
 
"푸른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겠지요
땅이 꺼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날 사랑하기만 한다면 무슨 상관이겠어요
내가 깨어나는 아침마다 사랑이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당신이 날 사랑하고 있으니
나는 달이라도 따올 거에요
나는 돈을 훔칠 수도 있어요

당신이 그걸 원한다면
나는 조국을 버릴 수도 있어요
나는 친구를 버릴 수도 있어요
당신이 그걸 원한다면
남들은 날 비웃겠지요
그러나 난 뭐든지 할 거에요

당신이 그걸 바란다면
어느 날 인생이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간다 해도
당신이 죽어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상관없어요

나 역시 죽을 테니까요
우리에겐 영원이 있어요
거대한 창공 속에서
하느님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맺어줄 거에요."











 

 




 

 












Edith Piaf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샹송 가수를 꼽는다면 단연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일 것이다.
'샹송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진정으로 거리의 가수라 할 수 있다.
본명이 에디트 가시옹인 그녀는 1915년 12월 파리의 가난한 노동자 구역인 벨빌에서 태어나 1963년 10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머니는 거리의 가수였고
아버지 역시 길에서 묘기를 부렸다. 그녀는 1922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터와 거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재주와 뛰어난 목소리를 알렸다.

스물한 살 되던 해, 그녀는 길에서 노래하다 우연히 어느 카바레 사장의 눈에 띄어 혼자 노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참새(속어로 피아프는 참새를 가리킨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곧 여러 음반사에서 그녀에게 계약을 제의해 왔다. 1936년 그녀는 첫 음반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코디언 연주자(L'Accordéoniste)', '외인부대 병사(Mon légionnaire)' 등을 발표했다.

그녀는 연극과 영화에서 배우로도 활약을 했다. 또 그녀는 노랫말을 쓰기도 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다. 그녀는 400여 곡의 노래를 남겼는데, 그중 약 80여 곡의 노랫말을 직접 썼다. 그녀는 점점 '어린 참새' 피아프의 이미지를 벗고 당당한 스타인 '에디트 피아프'로 변신해
갔다. 1944년 그녀는 카바레 물랭 루즈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브 몽탕과 만나 사랑에 빠져 그의 후원자 겸 매니저 역할을 자청했다. 그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바로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다.

1947년부터 그녀는 자신이 발굴한 '샹송의 친구들(Compagnons de la Chanson)'이라는 남성 그룹과 함께 미국 공연을 떠났고 그들이 함께 부른 '세 번의 종소리(Les trois cloches)'는
온 미국에 퍼졌다. 미국 공연 중 그녀는 권투 선수인 마르셀 세르당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1949년 10월 비행기 사고로 그가 죽으면서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그와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녀는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더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미국 공연과 '사랑의 찬가', '파담 파담(Padam… padam…)' 등의 대성공으로 그녀는 원기를 회복하였다. 1953년 이후 그녀는 샤를 아즈나부르 같은 신세대 작곡가들과도 손을 잡았는데, 자신의 노래를 고르는 데 아주 까다로웠다.   또한 1956년 미국 카네기 홀 공연과,
'파리의 하늘 아래(Sous le ciel de Paris)', '군중(La foule)', '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마담 피아프'는 무대 위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그녀는 질병과 마약의 어둠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1963년, 그녀는 47세로 숨을 거두었다. 교회에서는 그녀의 이혼 경력을 들어 장례식을 거부했지만,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