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식)베토벤 / 현악4중주 1번 F장조 Op.18-1 - Budapest String Quartet
jubila2017. 4. 6. 16:52
베토벤 / 현악4중주 1번 F장조 Op.18-1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 in F major, O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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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tring Quartet No.1 in F major, Op.18-1
베토벤 / 현악4중주 1번
Budapest String Quartet
Joseph Roisman, 1 Violin
Alexander Schneider, 2 Violin
Boris Kroyt, Viola
Mischa Schneider, Cello
제1악장은명쾌한 주제로 시작되는 밝고 즐거운 악장이다.
2악장 (Adagio affetuoso ed appassionato)
제2악장은 표정적인 깊은 애조를 띤 정서적인 악장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베토벤은 친구 아멘다에게 이 곡을 들려 주면서 무엇이 연상되는지 묻자, 아멘다는
‘사랑하는 동지가 이별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고 대답했다. 베토벤은 그 말에
‘나는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무덤의 장면을 연상했다’ 고 말했다고 한다.
제3악장은 스케르초로서 베토벤의 유머러스한 면을 볼 수 있고,
제4악장은 더욱 발랄하고 경쾌한 곡으로 마무리 짓는다.
작품 배경 및 구성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작품 18의 6곡은 초기의 작품이다.
1799년부터 1800년에 걸쳐 작곡된 작품으로 베토벤의 다른 초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 곡들은, 젊은 베토벤이 최초의 후원자인
로브코비츠 후작의 의뢰로 작곡한 것이다. 교향곡 제1번과 전후하여 만들어진 이들 6곡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으로 잘 정돈된 고전적인 양식과 함께 이후의 장쾌한 스타일의 중기
현악 4중주로의 예감을 비춰주고 있다.
작품 18에서 제1번으로 되어 있는 현악 4중주 제1번은 번호상으로는 1번으로 되어 있지만,
작품 18의 6곡 중에서 두 번째로 완성된 곡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활발한 분위기와 싱싱한
서정성을 가진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 절대음악의 세계를 지향 '베토벤의 현악 4중주'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실내악은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베토벤 창작의 중추였다.
베토벤을 통해 현악 4중주는 18세기의 오락음악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 순수한 음향에
의한 절대음악의 세계로 들어섰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과장이 없는 음악 그 자체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다른 장르보다 창작 시기 구분이 용이하다. 1798~1800년에 쓰여진
Op.18의 여섯 곡은 초기, 1806~1810년의 다섯 곡은 중기, 1822~1826년 죽음을 앞두고 작곡한
다섯 곡의 4중주와 대 푸가는 후기를 대표한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이 곡들은 베토벤
양식 특유의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베토벤의 내면적 사유와 성찰을 음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이후 작곡한 베토벤의 작품은 교향곡적인 화려함이나 외면적인 호소력은 없지만 악장
수가 확대되었고 기존의 주제와 동기 발전 서법이 희박해졌으며, 성부들의 짜임새도
대위법적인 부분과 단순한 부분으로 대조적인 양상으로 변화한다. 이런 음악적인 난해함
때문에 베토벤의 4중주는 듣는 이들에게 긴장감과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Budapest String Quartet)
헝가리 부다페스트 왕립오페라극장 관현악단 단원들이 1917년 결성해 1921년부터 연주 활동을 시작한 현악4중주단으로 에밀 하우저가 중심 역할 을 하였고, 1927년 요제프 로이스만이 제2바이올린을 맡은 이래 1930년 미셔 슈나이더가 첼로를, 1932년 로이스만이 제1바이올린을, 1936년 보리스 크로이트가 비올라를 맡으면서 변화를 거듭, 결성 당시의 멤버는 한 명도 없게 된다.
이들은 모두 헝가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러시아인들로서, 1938년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20여년을 워싱턴 국회도서관 소속 4중주단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로이스만이 건강 문제로 물러난 뒤 1969년 슈나이더마저 사망함 에 따라 해체되었다가 로이스만이 다시 결성, 신즉물주의를 반영한 새로운 미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앙상블을 구사하였다.
특히 풍부한 표현력과 치밀한 앙상블로 이름을 떨쳤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연주, 현대적인 박력, 명쾌한 리듬과 다양한 레퍼토리로 20세기 실 내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