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악장 Allegro F major 4/4 sonata 형식 제1주제는 <제3교향곡>의 처음과 같은 곡으로 시작되며 가락의 선율(旋律)은 낮은 C의 음부터 높은 F까지 3옥타브 이상 상승, 셈여림도 p에서 ff까지 올라간다. 전개부는 대규모이며 때때로 경과부의 가락이 나타나고 제1주제가 연주되며 2중 Fuga로 새로운 가락이 연주된다. 재현부와 경과부에서 많이 변화(變化)하며 Coda에서 제1주제에 의한 긴 전개 풍의 연주(演奏)가 이어진다.
제2악장 Scherzo, Allegretto vivace esempre scherzando B flat major 3/8 sonata형식 실내악(室內樂)으로 규모가 큰 Scherzando이며 주제(主題)가 나타날 때 전개 풍으로 이어진다. sonata형식이며 첫머리 수평진행(水平進行)의 rhythm적인 악구가 중요한 역할(役割)을 한다. 제2바이올린의 악구 제1주제, 제2주제이고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며 제1악장의 첫머리 주제(主題)와 관계가 있다.
제3악장 Adagio molto e mesto F major 2/4 sonata형식 가장 아름답고 슬픈 악장(樂章)으로 제1주제는 바이올린이 연주(演奏)하며 다른 악기가 대위법(counterpoint) 으로 더하여 연주된다. 전개부는 제2주제로 시작(始作)되며 제3부에서 새로운 가락을 연주한다. Coda에서 제1주제에 의한 climax가 쌓인 뒤에 제1바이올린의 cadenza풍의 빠른 passage로 연주(演奏)되며 4악장으로 이어진다.
3. 4악장/Menuetto grazioso. Allegro molto
제4악장 러시아 주제 Allegro F major 2/4 sonata 형식 제 3악장에 이어 첼로가 연주되는 민요풍(民謠風)의 주제는 러시아 민요집(民謠集)을 바탕으로 제1악장의 첫 주제(主題)와 제2주제도 이 제1악장의 주제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제3주제는 당김 음(syncopation)의 반주도 공유하고 제1주제가 정열적(情熱的)이고, 제2주제는 굵고 명상적(冥想的)이며 이 느낌은 C minor로 조바꿈을 하며 한층 짙어진다. 재현부는 B flat major이며 제1주제의 재현(再現)으로, Coda는 이 악장(樂章)뿐이 아니고 전곡의 정점(頂點)에 해당하며 제1주제를 전개 풍으로, 다시 adagio로 연주, ff의 presto로 이 곡이 끝난다.
Budapest String Quartet Joseph Raisman - violin I Alexander Schneider - violin II Boris Kroyt - viola Mischa Schneider - Cello
작품59의 제3번은 아마도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 전곡 가운데 가장 연주효과가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은 전곡 가운데 예술적인 면으로나 기교적으로나 가장 뛰어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모차르트가 [교향곡 제41번] ‘주피터’의 마지막 악장에 사용했던 화려한 푸가의 기법을 좀 더 밀도 있게 재현해내며 청중을 사로잡는다. 처음에 비올라에 의해 제시되는 주제선율은 제2바이올린과 첼로, 제1바이올린에 의해 차례로 모방되며 긴장감을 쌓아간다. 이 곡에서 푸가의 기법은 단순히 장식적인 차원을 넘어 모든 성부에 원동력을 주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대푸가」를 포함하여 17곡을 헤아리는 베토벤(독일)의 현악 4중주곡은 그 성격이나 창작 연대에 따라 대략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800년에 Op. 18의 6곡이 완성되고 나서 5년간 현악 4중주곡은 1곡도 쓰지 않았지만 그 뒤를 이어 이 곡까지 포함하여 3곡의 이른바 「라주모프스키」(실내악곡) 4중주곡 Op. 59 를 쓰게 된다. 이들 3곡은 어느 것이나 제2기의 양식을 짙게 나타낸 명작으로 아직 전통적인 작풍에 의했던 Op. 18의 여러 작품에 비해 각별한 원숙미와 형식적인 자유로움과 기교의 뛰어남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 「제3번」은 형식의 확대를 의도한 「제1번」, 내성적이고 다소 차분한 「제2번」을 종합한 밝고 힘찬 작품이며 제2기를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Recording of the Barylli Quartet playing
Beethoven's String Quartet n°9 in C Major, op. 59-3 "Razumovsky".
I. Andante Non Moto -- Allegro Vivace II. Andante Con Moto Quasi Allegretto (8:33) III. Menuetto Grazioso (19:35) IV. Allegro Molto (24:48)
「라주모프스키」(실내악곡)라는 속칭은 이 작품의 의뢰자로서 1792년 이래 빈에 주재하고 있었던 러시아 공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베토벤(독일)의 친구 리히노프스키 백작의 의형인 라주모프스키 백작 자신도 열렬한 음악 애호가로서 그가 고용했던 현악 4중주단은 역사적인 명악단이었다고 일컬어지며, 백작 자신이 그 제2바이올린을 맡을 정도의 명수였다.
1807년에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이 발표된 후 베토벤에게 혹평이 쏟아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내악이란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함께 즐기기 위한 음악이란 인식이 강했던 그 당시,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규모의 현악4중주곡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리라.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 ‘현악4중주’라는 음악은 더 이상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에게 현악4중주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동질적인 음색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가장 지적인 음악
이며, 작곡가로서 작곡기법을 시험하는 진지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1800년에 베토벤이 여섯 곡으로 구성된 작품18의 현악4중주를 작곡했을 때만해도 현악4중주는 그에게 그다지 심각한 장
르는 아니었다. 작품18의 초기 현악4중주들은 대부분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발랄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완성한 작품59의 현악4중주들은 작품18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던 동일인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6년 사이 베토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베토벤에게 현악 4중주를 의뢰한 러시아의 대사 라주모프스키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귓병의 악화로 인해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큰 변화를 겪은 베토벤은 공포와 분노, 반항심에 불타오르며 그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음악에 쏟아 붇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대중의 취향에 음악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혁신적인 음악을 대중에게 강요했다.
[라주모프스키 4중주]를 구상할 당시 베토벤의 작곡 스케치북에 적힌 짧은 질문에는 당시 베토벤의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은 베토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자 현악4중주를 진지한 음악으로 격상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또한 베토벤의 전기 작가 솔로몬의 말대로 18세기 전통의 한계를 넘어선 “교향악적 4중주곡”이다.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
이 세 곡의 놀라운 현악4중주곡은 단 시간 내에 완성됐다. 1806년 7월 5일에 작품59의 4중주곡 가운데 제1번을 먼저 완성한 베토벤은 두 달 사이에 나머지 두 곡도 완성했다. 그해 9월 3일에 베토벤이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에 이미 [라주모프스키 4중주] 작품59의 전 세 곡이 모두 완성됐음을 알 수 있다. 1807년 2월, 마침내 베토벤의 새로운 현악4중주곡이 초연되었다. 그 무렵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저택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 작품은 빈의 다른 장소에서 이그나츠 슈판치히 4중주단의 연주로 첫 선을 보였다. 초연 무대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현악4중주곡을 들은 청중들은 당황했다. 초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이렇게 기록했다.
“슈판치히가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의 첫 곡인 F장조를 연주하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베토벤이 농담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4중주곡이 아니었다.”
놀란 것은 청중뿐 아니었다. 음악가들 역시 베토벤의 새로운 4중주곡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베토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이 작품에 별로 신경을 안 쓴 게 분명한 것 같군요.” 그러자 베토벤의 대답은 이랬다. “이건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 기술적인 어려움 역시 문제가 되었다. 초연 당시 연주를 맡은 슈판치히 4중주단의 연주자 한 사람은 악보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자 베토벤은 “내가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할 때 내가 그 삑삑거리는 작은 깡깡이 따위를 신경이나 쓰는 줄 아시오?”라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