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Baroque

[스크랩] [민요] 강남 아리랑 - 장사익

jubila 2018. 3. 31. 19:26

강남 아리랑 - 장사익







강남 아리랑 / 장사익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줘요 

=  반 복 =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줘요

= 반 복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

 

! 이 얼마 만에 듣는 노래인가. 년 전,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 축구경기 TV 중계화면에 한복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3만 관중 앞에서 달랑 북 하나의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귀에 익었던 이 노래, 그러나 아주 다른 음색과 낯 설은 가락으로 부르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이 묻혀 있던 한을 끄집어 내어 우리 민요 창 같은 음률로 토해 내듯 불러대는 이 소리에 그러나, 나는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소리꾼 장사익 이었다. 어렸을 때 동네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부르던 이 노래를 왜 이제서야 다시 듣게 되었는가? 일제강점기, 김형원의 시,“그리운 강남1928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이화여전 음악교수가 된 안기영이 곡을 부친 노래이다. 그렇다, 이 노래는 그냥 철 없는 애들만의 노래는 아니다. 매몰찬 일제의 억압에서 독립의 봄을 그리워하던 우리 민족의 한과 간절한 소망이 담긴 노래였다. 그래서 일본당국에 의해 금지된 또 하나의 가곡, 울 밑에 선 ‘봉선화’같은 노래. 해방 후 남과 북의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마을마다 골목마다 메아리 쳤던 노래 였다.

 

작곡가 안기영은1937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오페라 ‘견우직녀’를 작곡, 초연했고,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한‘콩쥐팥쥐’같은 향토가극도 공연한 분이다. 이화여대 교가도 작곡한 그는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이념의 정국에서 좌파로 인식되어 그의 음악활동은 중지되고, 끝내 6.25 전쟁 중 월북했다. 그 후 그와 함께 이 노래는 사라졌다가1980년대 말에야 해금되었고, 죽은 듯 땅 속에 묻혔던 뿌리가 소리꾼 장사익에 의해 살아나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 챈들러 음악당에서 있었던 장사익 소리판 공연에서 열광하는3000 명 관중 속에는 나도 있었다.“사람이 그리워서” 라는 1부의 풋풋한 황토 빛 노래 들과 “나이트 클럽판”이라는 2부에서는님은 먼 곳에’,‘동백아가씨’같은 친근한 가요로 무대와 청중은 하나가 되었다. 전통악기와 양악기가 어우러진 반주로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와 정이 끈끈한 노래들을 탁하지만 가슴 시린 서정을 담아 그만의 독특한 소리빛깔로 노래했다.

 

마지막 노래를 마친 그는,“용의 눈에 점을 찍은 이 공연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미주순회 마지막 공연인 이곳에서 이처럼 성황을 이뤄준 데 대한 진솔한 인사말이었다. 감동에 찬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치며 모두 일어섰다.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기어이, “한 번 더! 한 곡 더!” 의 되풀이 되는 열화 같은 앙코르에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안기영의‘아리랑’을 불렀다.

 

“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 ‘아리랑’을 들으며 문득 일화 하나가 생각났다. 분단 30여 년, 남한 군사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1981, 비엔나에서 재미동포 교수와 기독학자 일행이 대화를 위해 처음으로 북에서 온 사람들과 만났다. 떨리는 만남이었다. 어색한 만남의 축배를 들고난 후에도 긴장이 안 풀려서 서로 말 문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좌중의 한 부인이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단다. 한 사람 두 사람 입이 열려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합창이 되고 끝내는 눈물을 머금으며 서로 껴안게 되었단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의 감흥은 쉬 갈아 앉지 않았고 많은 생각으로 그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민세대 삶의 페이소스와 에로스에 대한 카타르시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박하고 더 없이 고운‘아리랑’ 노랫말과 멜로디가 어찌 그리 아픈 굴곡의 역사를 겪어야 했으며, 우리 겨레의 마음에 들어와 즐겨 부르며 듣던 노래를 끊었다 이었다가, 버렸다 주었다 해야만 했는지! 겨레의 애틋한 소망을 담은 이 한 노래의 역사가 이리 우리 가슴을 에이니, 강점과 해방,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은 수난들을 그 어찌 말로 표현하랴.

 

4계절이 분명치 않은 이곳 남가주이지만 매해 3월이면 해안도시 산후안 카피스트라노에서 제비축제가 열린다. 우리 겨레에게도 평화와 통일의 감람나무 잎새를 물고 올 제비가 기다려진다. 그 언제 남과 북의 동포들이 한 자리에 앉아 손을 잡고 “정 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를 함께 다시 부를 날이 올까.      [ LA의 교민이 쓴글]

 







출처 : 거친파도 속의 하모니
글쓴이 : 이제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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