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Baroque

[스크랩] [크라식]브람스 / 대학축전 서곡 Op.80

jubila 2018. 6. 4. 18:13

브람스 / 대학축전 서곡 Op.80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Op.80

브람스 대학축전 서곡 Op.80


Johannes Brahms 1833-1897

BBC Singers
BBC Symphony Chorus
BBC Symphony Orchestra
Jiří Bělohlávek conductor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Op.80



    제 1곡: "우리들은 훌륭한 교사 (校舍)를 세웠다 (Wir hatten gebauet ein stattliches Haus). 

    제 2곡: "국가의 아버지 (Der Landevater)" 

    제 3곡: "신입생의 노래 (Was kommt dort von der Höhe)"

    제 4곡: "기쁨의 노래 (Gaudeamus igitur)"




    解  說


    브람스의 작품 중에는 연주회용 서곡이 두 곡 있다. <비극적 서곡>과 <대학축전 서곡>이 그것이다. 브람스는 1876년 초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조건이라면 영국에 가서 학위 수여식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배를 타기 싫어했고 영어를 잘 못했던 브람스는 손에 쥐고 있었던 자신의 교향곡 1번의 완성을 앞당기기 위해 이 학위를 거절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1876년 3월 이번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준다는 통지가 왔다. 이것을 제안한 사람은 브레슬라우 관현악협회의 지휘자이며, 브람스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베른하르트 숄츠였다. 브람스는 숄츠에게 바로 편지를 써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숄츠는 새로운 교향곡이나 축전에 어울리는 노래라도 한 곡 작곡해주었으면 고맙겠다고 답장했다. 케임브리지만큼 브람스에게 신경 쓰이는 조건은 전혀 없었다. 브람스는 그 감사 인사로 <대학축전 서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 소재와 구성 등에 구상을 가다듬고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작곡은 1880년 여름 무렵에야 착수했고, 오스트리아 북부의 휴양지 바트 이슐에서 완성됐다. 이곳에서 브람스는 <비극적 서곡>도 작곡했다.

    브레슬라우 대학 명예박사학위에 대한 감사

    빈 서쪽으로 200km에 위치한 광천수 온천 휴양지인 바트 이슐(Bad Ischl)은 브람스가 선호하던 피서지였다.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브륄은 브람스가 바트 이슐에 기거할 때 그를 돌봐주곤 했다. 1880년은 비가 많이 왔지만 브륄이 마련해준 숙소가 쾌적해서 브람스는 바트 이슐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 뒤로도 단골이 됐다. 1889년 무렵부터 만년의 브람스는 매년 여름 바트 이슐로 갔다.

    1880년 5월 바트 이슐에 당도한 브람스는 9월 중순까지 거기에 머물며 작은 여행도 다녔다. 8월 19일에 슐츠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람스는 ‘브레슬라우를 위한 닥터 심포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닥터 심포니’는 물론 <대학축전 서곡>을 의미한다. 이해 9월 9일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과 함께 독일 남동부 베르히테스가덴에 가서 클라라 생일(9월 13일)에 <대학축전 서곡>과 <비극적 서곡>의 기초인 네 손 피아노용 악보를 선사하고 이것을 클라라와 둘이서 연주했다. 이때 관현악용 악보는 이미 완성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12월 3일 요제프 요아힘과 함께 베를린의 호흐슐레 오케스트라가 이 두 곡을 연주한 것은 일종의 시연이었다. 1881년 1월 4일 <대학축전 서곡>은 브레슬라우 관현악협회 콘체르트하우스 홀에서 브람스의 지휘로 공개 초연되었다. 초연은 평이 좋았고, 라이프치히, 뮌스터, 크레펠트, 암스테르담, 덴 하그 등지에서 연주되었고 이들 연주회를 지켜본 브람스는 악보에 수정을 가했다.

    1881년 3월 브람스는 <대학축전 서곡>의 파트 악보의 교정과 총보의 초고를 출판업자 짐로크에게 보냈다. ‘대 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해’라고 적힌 총보와 파트 악보는 1881년 7월 출판되었다. 그리고 브람스는 브레슬라우 대학을 위해 헌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페이지를 충보한 장정판을 완성했다. 악보의 서두에는 브람스의 필적으로 ‘축전 서곡’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 최종고의 사본 악보(브람스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닌) 머리에는 짐로크에 의해 '대학축전 서곡'이라 적혀 있다.

    브람스는 1880년 11월 중순경 네 손 피아노용 악보 인쇄를 위한 최종고를 짐로크에게 보냈다. 이 네 손 피아노용 악보 역시 1881년 3월 출판되어 '대학축전 서곡'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따라서 현재의 '대학축전 서곡'이란 제목은 브람스 자신보다도 오히려 짐로크의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브람스는 곡의 제목에 대해 고민하면서 친구의 조언도 구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브람스의 곡으로서는 드물게 타악기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터키 군악대 행진곡’으로 부른 적도 있었다 한다.


















    출처 : 거친파도 속의 하모니
    글쓴이 : 이제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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