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落花流水, 김다인으로 발표된 그시대 최고의 반열에 있던 문학가이자 작사가
조명암의 가사에 이봉룡이 곡을 붙혀 최고의 가수 남인수가 부른 낙화유수 1942년에 발표된 노래다.
그 낙화유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노래의 원작가 조명암이 월북해서 금지곡이 되자박남포가 곡을 바꾸어 불렀다.
박남포는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의 또다른 이름이다.
1962년 남인수가 세상을 떴을 때 낙화유수처럼 세상을 떴다며 그 낙화유수 노래와
남인수의 떠남을 연계시키기도 했다.
이 낙화유수를 강남달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다. 1927년 상영된 영화 낙화유수에서
부른 주제곡을 "강남달" 이라고 한다. 강남달이 그 낙화유수의 주제곡으로 불렸기 때문에
혼동이 일어난듯 하다. 본 블로그 “춘하추동방송”에도
이정숙이 부른 강남달과 신 카나리아가 부른 강남달이 올라있다.
일제강점기 조명암과 쌍벽을 이룬 또 한분의 작사가로 박영호가 있다.
수 많은 노래가 박영호에 의해서 쓰였고 조명암이 나오기전 박영호는
최고의 작사가로 통했다. 이 박영호가 사용한 김다인이라는 필명은 조명암도 함께 썼다.
그래서 종종 조명암 작사노래와 박영호 노래가 혼동되는 수가 있다.
이 낙화유수는 조명암의 작품이다.
조명암이 월북작가여서 오랜동안 그 주옥같은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
그것을 안타갑게 생각한 작사가들이 그 노래를 자기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했거나
노래 가사를 일부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생겼다.
조명암의 노래가 추미림이나 박남포 등으로 되어있는 노래들이 많다.
추미림이나 박남포는 당대 최고 작사가의 한사람인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이다.
조명암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되어있을때 그 노래를 관리 해준 샘이다.
박창오는 2012년 3월 26일 세상을 뜨셨다. 조명암 노래는 이분 외에 다른 분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먕암으로 바로 잡히는 경우도 많음을 말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