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방에 새우 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전인권
황석영의 오래 전 소설 중에 '가객'이라는 작품이 있다. 수추(壽醜)는 가객이다. 노래를 위하여 온 생애를 바친 나머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가객이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짐승까지 다가온다. 그러나 추한 얼굴 때문에 노래가 끝나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수추는 자신의 얼굴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수추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노래'라는 시간 속의 완성된 세계를 위하여 온몸을 던졌으나 거문고 줄이 끊어지는 순간에, 그런 집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노래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나와 노래 사이의 거리도 사라진다. 자유로워진 그는 마을로 돌아와 노래를 부른다.
"잔치가 있는 집이나 슬픈 일이 일어난 집을 찾아가서 주인께 공손히 청하여 조심스럽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는 아늑하고 힘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정과 말할 수 없는 용기를 돋아나게 했다. 수추는 제 추했던 얼굴을 이제는 모두 잊었다."
고을 사람들이 수추의 노래를 너무 좋아하게 되자 장자(지배자)는 그를 붙잡아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한다. 수추는 살아있는 한 노래를 부르리라 대답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노래 부르는 것은 허용해주겠다고 하자 수추는 '제 노래를 원하는 사람들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장자는 그를 가둬버리고 그의 악기도 밥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수추는 노래를 불렀다. 장자는 그의 혀를 잘라 감나무에 매달아버렸다. 그래도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수추는 목구멍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의 안으로 꽉 잠긴 노랫소리가 또 저자 바닥에 깊이깊이 스며들었고, 사람들은 몰래몰래 그것을 따라 불러 꿈만이 떠도는 밤에도 잠꼬대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는 수 없이 장자는 수추의 목을 베어버렸다. 고을의 안녕과 민심의 정돈을 위하여 장자는 그의 목을 베었는데, 그래서 노래는 멈춘 듯하였는데, 사람들은 들려오지 않는 수추의 노래를 듣기 원하였고, 그런 마음 때문에 수추의 노래는 그가 죽었음에도 결코 끝나지 않은 듯하다.
한여름, 나무에 달라붙어 '맴맴......' 울어대던 매미들도 사라지고, 수액 다 빨아먹는다던 중국산 빨간 매미들도 사라지고, 밤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하다. 귀뚜라미는 어떤 소리로 울까. 소설가 김형경 식으로 말하면, 다들 '제 이름을 불며' 울기 때문에 귀뚜라미는 '귀뚤 귀뚤' 하며 우는데, 어떤 사람은 '호르르르' 운다고 말했다. 아니, 그런 노래를 불렀다.
전인권의 노래는 '잠시' 멈춰있다(사진 노순택).
여름가고 산들바람 선뜻 불어 가을이 오면 내 님 얼굴 유성기처럼 맴도네, 맴도네 보름달이 둥실 뜨고 귀뚜라미 호르르르 울면 내 님 얼굴 풍뎅이처럼 맴도네 멤도네
혹시 귓전으로 노래 하나 들려오지 않는지. 그렇다. 전인권의 노래 '헛사랑'의 한 구절이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전인권의 노래는 시고 그는 시인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중세의 시가 노래에 다름 아니었고, 너저분하게 구어체들을 늘어놓는 산문의 시대가 오기 전에, 격과 운의 엄한 틀 안에서, 그 틀을 벗어나는 천상의 언어로 빚어낸 것이 시였고 대체로 그것들은 노래나 가락으로 읊는 것이었다.
'가객'이라는 말은 요즘이야 하나의 비유로 쓰이지만, <청구영언>의 김천택이나 <가곡원류>의 안민영을 가객이라고 불렀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보름달이 둥실 뜨고 귀뚜라미 호르르르 울면'이라고 노래하는 전인권은 한 시대의 당대성에 즉면하였으되 그 시대를 완전히 초월해 버리는 가객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랴. '고을의 안녕'을 위하여 그는 자주 추방되었지만, 누구도 그의 노래를 잊어버렸거나 완전히 절단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 9월 4일은, 가객 전인권이 1954년에 서울에서 실향민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날이다. 그는 성장기 때 미술을 먼저 익혔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고등학교까지 그만뒀다. 영화 간판도 그려보고 만화도 해보고 화실도 다녔다. 그러던 18살 때 기타를 배웠고 삼청공원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가 삼청공원에서 노래를 불렀던 까닭은 그의 집이 삼청동 총리공관 뒤편의 언덕에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에 나는 월간 <사회평론>의 부탁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 언덕 길을 걸어간 적 있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젊었을 때 삼청공원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 한 소절을 내게 들려주었다. 존 레논의 'Love'였다.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자주 선정되는 '들국화 1집'
전인권은 1977년에 작곡가 이주원을 만나 ‘따로 또 같이’에 참여하여 1979년에 그 1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앞에 소개한 아름다운 노래 '맴도는 얼굴 (헛사랑)'을 그는 불렀다. 그리고는 이 그룹을 탈퇴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전인권은 소속사 사장이 "'명랑운동회' 같은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쇼에도 출연해서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얘기를 하길래 탈퇴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라이브에서 살고 죽는 가객이고 싶었다. 그래서 조덕환, 허성욱, 최성원 등을 만나 1983년 10월에 그룹을 결성하여, 그러던 어느 날에 멤버 중에 하나가 씹던 껌 이름에서 따온 '들국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1984년 제작된, 우리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별들(이광조, 시인과촌장, 강인원, 최성원, 어떤날, 양병집 등)이 일시적으로 조우한 <우리노래전시회> 1집에 참여한 뒤, 이 앨범에 수록한 '그것만이 내 세상'을 바탕으로 소극장 시대를 열었고, 드디어 전인권이 오징어를 물고 있는 사진이 실린 첫 앨범이 1985년 9월에 발표된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이 앨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적 있다.
"'행진'의 도도한 선언, '그것만이 내 세상'의 단호한 의지, '세계로 가는 기차'의 직진하는 낭만, '매일 그대와'의 수줍은 시정,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아름다운 정적, '사랑일 뿐이야'의 도저한 포효. 이 풍만한 표정들이 하나의 음반 안에 맵시 있게 조리된다. 들국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정표였다. 이 당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꿈꾸었던 모든 청년들은 들국화를 동경했다. 그 장렬한 리스트엔 서태지와 신해철, 윤도현과 이적, 이승환과 김장훈 그리고 크라잉넛을 비롯한 숱한 90년대 인디밴드들의 면면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물론 들국화는, 사실상 1집으로 막을 내린 셈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전인권은 섬세한 감성의 최성원과는 조금 다른 길로 걸어가면서, 허성욱과 앨범을 냈고, 1988년에는 독집 앨범을 내놓았다.
'샤우팅'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 전인권의 모든 것이 담긴 첫번째 독집 앨범
이 독집 앨범이야말로 전인권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좋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그가 자작의 능력을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고, 단지 '샤우팅'을 잘하는 기예의 소유자가 아니라 깊은 우물 속처럼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내면의 방황과 상실감을 앨범 전편에 걸쳐 보여준 작품이다. '들국화 1집'에는 전인권도 있고 최성원도 있고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이병우도 얼핏 보이지만, 이 앨범에는 오로지 전인권만이 서성거린다. 20년이 지났어도 이 앨범에 펴져 있는 자욱한 안개는 그대로다.
그후로 전인권은 실질적인 방황의 길을 걷게 된다. 1989년에 2집을, 1995년에는 들국화를 재결성 앨범을, 2000년에는 재기 콘서트를 가졌지만 1992년 이후 그는 네 차례의 구속과 실형을 겪었다. 2002년에 재결성한 들국화와 윤도현 밴드 그리고 강산에가 '진품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투어를 하였는데, 그 한 무대에서 전인권은 '여러분, 마약은 죄가 되지만, 여기서 맘껏 노는 건 죄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놀았고, 그는 또 감옥에 갔다.
홍대앞 롤링홀에서 열린 공연 포스터
한상원과 함께 한 1998년의 앨범 '첫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래 '떠나기 전에'에서, 전인권은 노래한다. "갈 길은 멀고 말은 자꾸 많아지고 / 내 어둠의 비밀 언제나 나는 알고 있었지."
오늘, 9월 4일은 전인권의 생일이다. 한편으로 지난 해 여름의 시끌벅적했던 '긴급 연예 속보'를 헤아려보면, 바로 그저께, 9월 2일이 1년 징역의 만기 출소 날이 된다.
그런데 출소했다는 보도가 없어 조금 궁금하다. 무슨 일이 덧붙여져서 뭔가 연장된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연예가 뉴스' 만드는 쪽에서는 구속된 것이야 뉴스가 되지만 출소한 것은 그럴 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럴 법도 한데, 하지만 가객이 다른 일로 잡혀 들어간 것은 뉴스지만, 이제 세상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 그게 조금은 이상하다. 물론 그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가객 수추의 노래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법이지만......
가객의 비가 걱정 말아요 그대 | 전인권 지음 | 청년사
이 책이 발간되기 직전에 전인권은 뜨거운 말들에 갇혀 있었다. 물론 그 말의 진앙지는 전인권 자신이지만, 세상은 그와 그의 사연을 다양하고 기이한 열정으로 증폭시켜버렸다. 그래서 이 책도 그런 증폭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읽어보면,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다. 대필 작가 없이 혼자 쓴 그의 자전 기록일 뿐이다. 물론 우리네 자서전 문화의 특성과 아직은 '현역'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했다기보다는 기억의 갈피를 더듬고 추억의 장면들을 재현하면서 음악 인생의 여러 풍경을 반추한 것이지만, 그래도 전인권의 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전인권이 좀더 '똑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곤 한다. 그의 코믹한 광고, '인간시대' 류의 일상 다큐 출연,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던 '트리뷰트', 재결성과 재결합, 절제되지 않은 생활 등은 노래방에서도 오직 자기 노래만 부르는 조용필의 경우에 대비하여 많은 아쉬움을 준다. 아마도 무너진 성채의 주인이기 때문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긴 '똑똑한' 전인권도 조금은 어색하다. 조용필을 일컬어 거룩한 성채의 '가왕'이라고 한다면, 역시 거리의 가객은 전인권이다.
걱정없는 저 자주빛이 부러워
전인권 1집 | 전인권 | 신나라뮤직
그를, 단지 봉두난발이나 하고, '예에......인권이 라이프' 하면서, '프로 갬블러가 되어 전세계 돌면서 230억 원을 벌고 싶다'는 엉뚱한 소리 잘하고 샤우팅이나 잘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다면 이 앨범을 꼭 사서 듣기 바란다. 허망하고 길 안 보이고 답답하고 갑자기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멍해지는 것이 젊은 시절의 일상인데, 꼭 그런 때에 '사랑하고 싶어', '돌고, 돌고, 돌고', '돛배를 찾아서', '맴도는 얼굴(헛사랑)',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의 노래는 한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에 낮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밤에는 '헛사랑'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앨범에 자욱히 끼어있는 안개를 잊지 못할 것이다. 노래들마다 시들이다.
내 어둠의 비밀, 난 잘 알고 있지
첫번째 앨범 | 전인권 & 한상원 | DMR
이 앨범은 많은 음반/서적 사이트에서 품절인 상태다. 그럼에도 소개한다. '알라딘'에서는 '중고샵' 섹션에서 구할 수 있다. 보통 표시 가격에서 얼마라도 할인해서 파는데, 이 중고 앨범은 원래 판매가보다 조금이나마 높게 책정되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다들 '들국화 1집'은 많이 듣거나 소장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골랐다. 나는 그의 많은 앨범들 중에서, '기타'라는 이름의 세 번째 팔을 가진 한상원과 함께 만든 1998년 앨범 '첫번째 앨범'을 정말로 좋아한다. 이 앨범에서 전인권은 '그것만이 내 세상'을 약 10분에 걸쳐서 부른다. '떠올라'는 전인권 샤우팅의 백미다.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에 '떠나기 전에'라는 노래가 있다. 마치 소설 '가객'의 수추가 불렀음직한 느낌마저 준다. 정형화된 선율에서 멀찍이 벗어난 노래, 밑도 끝도없이 내뱉는 한탄과 자조의 가사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글자씩 적었다기보다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웅얼거리는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