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그날 - 김연숙

jubila 2021. 7. 21. 16:15

그날 - 김연숙

 





그날

김연숙



언덕위에 손잡고
거닐던 길목도 아스라히
멀어져간 소중했던 옛생각을
돌이켜 그려보네
나래치는 가슴이
서러워 아파와 한숨지며
그려보는 그 사람을 기억하나요
지금 잠시라도

달의 미소를 보면서
내 너의 두 손을 잡고
두나 별들의 눈물을 보았지
고요한 세상을 우~우~

한아름에 꽃처럼
보여지며 던진 내 사랑에
웃음지며 남의 소식
전한 마음 한없이 보내 본다










 



 



김연숙은 지난 1977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거머쥐며 데뷔 전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가수다. 1982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그는 '그날' '초연' '숨어 우는 바람소리' '스리살짝' 등으로 사랑을 받았다. 이후, 신곡 '과녁'을 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과녁'은 미디움 템포의 소프트로크 음악으로 유럽적인 선율이 특징인 곡이다.



김연숙은 최근 티브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연숙은 어딜 갔다 와야 뜨는 가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대표적 히트곡들이 발표 직후가 아닌 시간이 흐른 후 주목을 받은 것을 가리킨 것.

시작은 '그날'이었다. 발표했을 당시 타이틀곡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노래가 김연숙의 대표적인 히트곡 중 하나가 됐다.

이에 대해 김연숙은 "데뷔곡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가 어렵고 무거운 곡이었는데 내가 소화를 잘 했다. 그랬더니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이 모였다. '그날'의 작곡가가 당시 제일 무명이었는데 노래가 정말 좋아 내가 타이틀곡으로 밀었었다"고 운을 뗐다.

김연숙은 "'그날'로는 방송 활동도 하지 않았다. '찾고 싶은 내 사랑'이 좋대서 3~4개월 활동했을 뿐. 그런데 30만장 이상이 팔렸다. 진짜 1등 공신은 작고한 DJ 이종환 씨"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매니저 문제가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니 방송일이 무서웠다. 그래서 앨범을 내놓고도 포기하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했었다"며 "가끔 '그날'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노래가 뜨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매스컴을 타는 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바닥을 떠나 구멍가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이때 이종환 씨가 나타났다고 했다. 김연숙은 "그때는 DJ 연합회가 활발할 때였다. 음악 다방 등에 있는 DJ의 힘이 셌다. 방송 PD들은 별로라고 했는데 DJ들이 노래를 틀었다. 그때 이종환 씨가 카페에서 그 노래를 듣고 PD들에게 '이런 거 안 틀고 뭐하냐'고 했다더라"며 "이후 경상도 고성의 지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지역 방송 차트 1위에 올라 난리가 났다더라"며 "한동안 신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소개됐다. 이후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고, 방송을 거꾸로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다른 히트곡 '초연'에도 사연이 있었다. 김연숙은 "'초연'도 별 반응이 없다가 결혼해서 미국에 다녀 오니 가요교실 강사들이 많이 가르치고 불리는 노래로 떠 있더라"며 "사실 가요계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노래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초연'까지 역주행을 하자 많은 분들이 노래를 왜 안 하냐더라. 그때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도 나서고 해서 방송을 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녁' 역시 지난 1월 발매 이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김연숙의 히트곡 사연은 그가 '과녁'을 통해 만들어 낼 '열풍'이 기대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Adventurer
승부사


"이것이 아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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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hrFARWMfdg?list=RDUsUmxrw9-bQ 

https://youtu.be/pq6MMtPlDv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