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깐시온] Se Que Volveras - Julio Iglesias & Nana Mouskouri

jubila 2021. 7. 29. 12:15

Se Que Volveras - Julio Iglesias & Nana Mouskouri

 





Se Que Volveras

Sung By
Julio Iglesias & Nana Mouskouri


Nana;
Cuando pienso en ti
Me siento triste
Sola sin tu amor
Ya nada existe
Que dificil es
Es tanta soledad
Cuando pienso en ti
Y tu no estas

Julio;
Cuando pienso en ti
Me siento solo
Yo me acostumbré
Tanto a tu modo
Nada es igual
Para decir verdad
Cuando pienso en ti
Y tu no estas

Nana & Julio;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lo sé
Te quiero junto a mi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lo sé
Te quiero junto a mi

Julio;
Un amor asi
Me da esperanza

Nana;
Un amor asi
Me da confianza

Nana & Julio;
Un amor asi
Duet to end.
No puede darme mas
Cuando pienso en ti
Y tu no estas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lo sé
Te quiero junto a mi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lo sé
Te quiero junto a mi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amor
Sé que volveras lo sé
Te quiero junto a mi








 

 




 


1943년 스페인 태생의 훌리오 호세 이글레시아스 데 라 쿠에바는 대학 졸업 후 1968년 그는 바인도튼 스페니시 송 페스티발에 참가해 자작곡 La Vida Sigue Igual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스페인을 대표해 브라쇼프 가요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등에 참가했고 스페인을 비롯한 라틴 전역과 유럽을 돌며 투어 콘서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며 명성을 높여갔다.
그가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한 것은 1978년 CBS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맺게 되면서 부터였는데,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앨범을 제작했고, 미국과 영국 시장을 목표로 하여 영어로도 앨범을 녹음했다. 그의 이같은 노력은 'Begin the Beguine'이 넘버원 히트를 치며 빛을 발하였고 곧 이어 출판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1984년 발매된 듀엣 모음집 '1100 Bel Air Place'는 미국 내에서만 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는 지금까지 8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3억 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1990년대 말 전세계를 라틴 팝의 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리키 마틴보다 훨씬 이전에 라틴 팝 스타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역시 음악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 1943년생이니 그의 나이 어느새 팔십을 바라보고 있지만, 음반에 실린 그의 목소리에선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 힘들다. 50년을바라보는가수활동경력, 그리고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으면서도 여전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는 ‘로맨틱 가이’ 훌리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검은 뿔테안경에 긴 생머리, 흰 드레스, 청아한 목소리, 나나 무스꾸리는 1934년 그리스에서 태어났으며, 극장의 영사 기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무수한 영화를 보며 자랐다. 그녀는 아픈 전쟁을 겪었고 독일군의 총탄에 쓰러져 죽는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았으며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16세 때 아테네 음악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재즈 밴드에서 일하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 무렵 그리스의 유명한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눈에 띄어 1958년 음반을 발표했고 이듬해 ‘그리스 음악제’에서 대상과 차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지중해 음악제’에서도 대상을 받은 나나 무스꾸리는 유럽으로 진출했다. 독일에서 낸 음반이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여러 영화의 주제곡을 불렀다. 1962년에 퀸시 존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앨범을 냈으며 파리에 정착한 뒤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해리 벨라폰테와 함께 미국에서 긴 순회공연을 하고 라이브 듀엣 앨범을 냈다. 1969년 영국에서 낸 음반 는 빅 히트를 기록했고, 1971년엔 6개의 황금 음반을 기록함과 동시에 모든 영어권 국가에서 그 해 최고의 가수로 뽑혔다. 1984년엔 20여 년 만에 고국 그리스에서 공연을 갖고 그리스어 앨범을 발표했다. 그녀는 클래식과 재즈, 전통음악, 샹송, 팝, 종교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활동을 해왔다. 총 4억 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된 세계적인 아티스트로서, 나나 무스꾸리는 골든 디스크 300회 수상 기록을 세워 음악계의 전설이 되었다. 나나 무스꾸리는 1993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었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유럽연합 의회에서 그리스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나 무스꾸리에게는 시차가 없다. 그녀는 런던에서 잠이 깨어 오후에는 베를린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녹화하고 시드니나 도쿄의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드는 일쯤은 예사롭게 생각한다. 나나는 그리스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사색을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동시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 이야기를 즐긴다. 친구와는 그리스어로, 남편이나 아이들과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고, 비서와 업무 이야기를 할 때는 영어를 사용한다. 50년 동안 노래를 해오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은 단 일초도 해 보지 않았던 나나는 한 발짝씩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4년 전, 자식들이 서른을 넘기자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고별 공연 준비와 함께 자신의 70여 년 인생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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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이것이 아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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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월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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