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 HUR (벤허)
벤허 (1959, Ben-Hur) 감 독 : 윌 리 엄 와 일 러 출 연: 찰튼 헤스턴, 잭 호킨스, 스티븐 보이드 등 각 본 : 루 월레스, 칼 턴버그, 맥스웰 앤더슨, 크리스토퍼 프라이, 고어 비달 제작: 샘 짐발리스트, 윌리엄 와일러 원 작 : 루 월 레 스 흔히 벤허 하면 전차경기만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원저자 (루월리스)는 그리스도교의 허구를 파헤칠 소설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먼저 성경책을 여러 번 읽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높이는 소설 "벤허"를 썼다고 합니다. 이를 영화화한 것이 이 필름입니다. 주인공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가를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당시 이 영화는 퇴계로의 대한극장에서 개봉 되었는데 "벤허"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70mm 대형 영화로 대한극장은 "벤허"의 상영을 위하여 긴 시간 극장을 휴관하고 국내 최초로 70mm 대형 영화 시설을 갖추고 "벤허"를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극장외 타극장에서는 70mm대형영화 "축소판" 으로 상영 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후에 영화를 더 좋아하게된 동기는 지금 흘러나오는 "사랑의 테마" 때문이기도 합니다. 참 오랜전에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들,,, 지금 이 음악을 들으니 더욱 생각이 납니다. 오래전의 영화와 음악속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봅니다. 이제는 |
서기 26년, 로마 제국 티베리우스 황제 제위 시대. 쥬다 벤허(찰턴 헤스턴 분)는 예루살렘의 명망있는 유대인 귀족의 장자이다. 어느 날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쥬다야 지방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해오는데, 신임 총독의 주둔 사령관으로 벤허의 옛 친구인 멧살라(스티븐 보이드 분)도 함께 부임해 온다. 그러나 멧살라는 유대 민족의 지배를 공고히 할 생각으로 벤허에게 동족을 배신하라고 종용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벤허는 멧살라와의 절연을 선언한다. 다음날 신임 총독의 입성식 중에 벤허의 여동생 티르자(캐시 오도넬 분)의 실수로 총독의 머리에 기왓장을 떨어뜨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멧살라는 벤허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벤허 가족을 반역으로 몰아 잡아들이고 재산을 몰수한다. |
결국 어머니 미리암(마사 스콧 분), 누이 티르자, 연인 에스더(하야 하라릿 분)는 감옥에 보내지고, 벤허는 갤리선의 노예로 팔려 간다.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대면하고 예수는 목마른 그에게 물을 준다 그로부터 4년 후, 벤허는 로마 갤리선에서 노젓는 노예로 지내고 있다. 마침 신임 집정관 퀸투스 아리우스(잭 호킨스 분)는 지중해에 출몰하는 메써도니아 해적 소탕작전에 나서는데, 전투 중 그와 벤허가 탄 배가 해적선의 격돌을 받고 침몰하게 된다. 벤허는 이때 함대 사령관인 아리우스의 생명을 구하고, 이를 계기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그의 양자가 된다. 로마에서 화려한 귀족 생활을 하게된 벤허이지만 그의 마음 속은 가족의 생사와 멧살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평온을 찾지 못한다. 마침내 벤허는 아리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로마를 떠나 쥬다야 지방으로 향한다. 고향 집에는 살아남은 예전 노예들과 에스더가 어렵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에스더는 벤허에게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벤허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멧살라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아랍인 부족장 일더림의 지원을 받은 벤허는, 멧살라가 출전하는 전차 경주에 함께 출전하여 그와 자웅을 겨룬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차 경주가 시작되고, 승리를 위해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던 멧살라는 결국 말과 전차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만다. 멧살라는 죽음에 직면해서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아직 살아있으며 나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골짜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멧살라는 죽는 순간에까지도 벤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It goes on, Judah. The race... The race is not over. 계속된다, 쥬다. 경주는...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병 골짜기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간 벤허는 그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스더는 예수가 기적을 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벤허를 데리고 간다. 그러나 신임 총독 폰티우스 빌라도(프랭크 드링 분)는 유대 민족의 반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에 처한다. 벤허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는 예수에게 물을 떠다주려는데, 예수의 얼굴을 보고 그가 노예로 팔려가던 중에 나자렛에서 자신에게 물을 떠주었던 사람임을 알고 놀란다.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간을 지켜보며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듣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숨지자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벤허는 에스더에게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며, 비로소 자기의 마음속에서 복수심이 사라졌음을 알려준다. I heard Him say,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그때 난 그분의 마지막 말씀을 들었다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저지르는 일을 모르나이다.") And I felt His voice take the sword out of my hand.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내 손의 칼을 거두어가는 걸 느꼈소.) |
영화 해설 고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유대인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신의 섭리를 그린 대작 영화로, 찰턴 헤스턴 주연, 감독은 로 유명한 명장 'William Wyler 윌리암 와일러'가 맡았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제작비인 1,500만 달러를 투입, 10년의 제작 기간과 10만명의 출연 인원, 1년여 촬영 기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로 필름을 소모했다. 대사가 한 마디 이상인 등장 인물만도 496명, 하이라이트인 15분간의 전차 경주 장면을 위해 1만 5천명이 4개월간 연습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카데미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해상전과 전차 경주장면은 영화사에 빛나는 명장면이자 압권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는 남북전쟁의 영웅이며 터키 대사를 지낸 바 있는 Lew Wallace 루 월레스. 188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곧 무대에 올려져 대성공을 거두었고, 1925년 프레드 니블로 감독의 무성영화 (벤허)가 발표됐다. 1925년작 <BEN-HUR (벤허)>의 포스터 1,50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놓고, 그 많은 돈을 들이고도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낼 수가 있을까라는 의견이 분분했었다. 1958년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벤허'의 촬영이 시작됐을 때 제작사인 MGM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대단한 흥행을 기대했던 뮤지컬 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벤허>의 제작은 MGM社의 파산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MGM도 이만한 도박을 시작할 때는 믿는 바가 있었다. 흑백무성영화를 리메이크해서 짭짤한 재미를 봤던 MGM은 그들이 1925년에 만들었던 <벤허>를 컬러판 와이드스크린에 부활시킬 수만 있다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분석했다. 프레드 니블로가 연출한 오리지널 <벤허>는 당시 제작비 400만 달러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MGM은 1951년 'Mervyn LeRoy 머빈 르로이'가 연출한 의 성공사례에도 주목했다. 제작비 850만 달러를 들인 이 작품은 1,250만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였다. <벤허>의 프로듀서 'Sam Zimbalist 샘 짐발리스트'는 이탈리아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쿼바디스>를 찍은 경험이 있는 제작자였고, 그는 <쿼바디스>에 사용된 시설, 세트, 의상을 <벤허>의 촬영에 재활용하는 한편, 필요한 인력 역시 <쿼바디스> 제작진에서 끌어들였는데, 영화음악을 맡은 'Miklos Rosza 미클로스 로짜', 촬영의 로버트 서티스, 세트 디자이너 윌리엄 호닝과 에드워드 카르파그노가 그들이다. 주인공 쥬다 벤허 역에 'Charlton Heston 찰턴 헤스턴'만한 배우는 없었다. 그는 'Cecil B. DeMille 세실 B.드밀' 감독의 1956년작 에서 모우지스로 출연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십계>는 당시 다음 가는 흥행수익을 기록한 작품으로, 찰턴 헤스턴은 서사극의 영웅이 견지해야 할 강인한 육체, 불굴의 의지, 근엄한 아버지 이미지 등을 고루 갖춘 적임자였다. 그는 서부영화에서 존 웨인이 했던 임무를 서사극에서 수행했고, 많은 영화에서 가부장제와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과 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탄 인물이었지만, 스펙타클한 서사극 분야에선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후대의 평가는 영화 <벤허>에서의 감독의 공은 그리 크지 않다는 쪽이다. 해전과 전차경주로 대변되는 놀라운 스펙타클이 사실은 제2 제작진 연출자였던 앤드루 마튼과 야키마 가누트의 작품이라는 것. 심지어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오, 신이시여, 과연 이게 내가 만든 작품입니까?"라고 했다던 윌리엄 와일러는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벤허>가 갖는 의미를 줄이려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195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윌리암 와일러), 남우주연상 (찰턴 헤스턴), 남우조연상 (휴 그리피스_일더림 역), 촬영상 (로버트 L. 서티스), 미술상 (윌리암 호닝 외 2명), 녹음상 (MGM 녹음 스튜디오), 음악상 (미클로스 로짜), 특수효과상 (아놀드 길레스피 외 2명), 의상디자인상 (엘리자베스 하펜든), 편집상 (랄프 윈터스 외 1명) 등 모두 11개 부문을 수상했다, ───────────────────────────────────────── [천문학적인 제작비] 1,5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제작비이긴 하나, 1963년 제작된 20세기 폭스社의 의 제작비는 무려 6,000만 달러가 넘었다. ( 영화 <300 (2007)>의 제작비가 바로 6,000만 달러였다고 한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다운 배우와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서 <벤허>만큼의 평은 받지 못한 영화였다.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에 비하면 <벤허>는 제작비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쿼바디스>와 <벤허> 등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대작 시대물은 바로 <클레오파트라>로부터 시작하여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무래도 시대물이다보니 일정 규모 이상의 과도한 지출이 발생하는 데에 비해 관객의 관심은 그만큼 감소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에 개봉한 의 흥행 참패는, 마침내 리들리 스콧 감독의 가 현대적 감각의 시대물로 흥행 신기원을 이룰 때까지 이후 한동안 헐리우드의 시대물 제작 시도를 주춤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1,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일단 그리스나 로마 등 고대를 배경으로 한 대형 서사극의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글래디에이터>의 예산이 1억 달러가 조금 더 들어갔고, 빈 디젤 주연의 의 예산은 5천만 달러로 잡혀 있다고 한다. (시대극으로서는 좀 적은 예산이 아닌가 싶다.) 또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의 예산도 4천만 달러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2003)>의 제작비가 마케팅비를 포함하여 180억원이였다고 하는데, 이는 달러당 1,000원 정도로 환산하면 2,000만 달러가 조금 안되는 금액이었다. |
'음악의 산책 > Baroq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곡] 쇼팽 - 즉흥 환상곡 (0) | 2023.03.31 |
---|---|
[가요] 휘파람을 부세요 - 정미조 (0) | 2023.03.30 |
[가곡] 사월의 노래 - 백남옥, Mezzo Soprano (0) | 2023.03.30 |
[뉴에이지] When I Fall in Love - Andre Gagnon (0) | 2023.03.29 |
[교향곡]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8번 (0) | 202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