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1번
Shostakovich Symphony No.11 in G minor, op.103 "The Year 1905"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번 사단조,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
1 Adagio (The Palace Square), 2 Allegro (The 9th of January), 3 Adagio (Eternal Memory), 4 Allegro non troppo (Tocsin) BBC National Orchestra of Wales Thomas Søndergård, conductor |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반추하다 쇼스타코비치 최초의 ‘표제 교향곡’인 이 작품은 악장마다 ‘피의 일요일’ 당시의 상황을 상정한 제목을 갖고 있으며, 모든 악장에 등장하는 혁명가의 선율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악장은 중간에 쉼 없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 전곡 연주에 통상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이 장대한 작품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교향곡 7번이나 교향곡 8번처럼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묘사한 ‘음악적 프레스코 화’와도 같다고 하겠다. |
1905년 1월 9일 일요일 오후, 러시아의 고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에서 일군의 노동자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르에게 제출할 탄원서를 들고 겨울궁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무렵 러시아의 사회상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20세기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생산과잉 현상으로 인하여 자본가들은 생산을 줄이고 고용 인력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러일전쟁의 여파로 세금 부담은 가중되었고 생필품 가격도 나날이 치솟았다. 그런 상황에서 1904년 12월 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회 회원 4명이 해고되자 불만이 폭발했고, 15만 노동자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용색이 짙은 ‘러시아 노동자협의회’를 이끌고 있었던 가폰 신부는 노동자들에게 차르를 직접 찾아가서 탄원서를 제출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차르가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은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걱정하는 그것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과 타도의 대상은 차르가 아닌 고용주임을 설파해 온 그였다.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한 전날 밤, 그는 니콜라이 2세에게 밀서를 올려 제발 국민들 앞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비무장 비폭력을 주장하며 참가자들을 단속하고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그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역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포함한 시위대의 숫자는 무려 14만에 달했다. 사람들은 마치 축제일인 양 나들이옷을 챙겨 입었고, 행렬의 선두는 교회의 깃발과 성상, 그리고 차르의 대형 초상화를 높이 들고 걷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시여! 차르를 보살피소서.” 시위대는 찬가를 소리 높여 불렀고, 경찰은 그들을 위해 마차와 차량을 통제하면서 길을 터주었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차르의 초상화를 보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궁전 앞 광장에 다다랐을 즈음, 시위대는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차르가 아니라 무장한 군대와 경찰, 바리케이드임을 알게 되었다. 시위대는 행진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비극적인 명령이 내려졌다. 황제의 군대와 경찰들이 무방비 상태인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서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고, 시위대는 당황하면서도 궁전을 향해서 계속 전진했다. 그러나 궁에는 수비대장이 이끄는 2만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궁으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그들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총검을 휘둘러 댔다. 혁명에 바쳐진 음악적 기념비 러시아 역사에 ‘피의 일요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약 5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차르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고, 러시아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저항, 반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날의 참사가 ‘제1차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1905년’이라는 부제를 가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바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을 테마로 삼아 작곡되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에 착수한 1956년은 흐루시초프가 ‘평화 공존론’을 제창하고 ‘스탈린 비판’을 감행하면서 이른바 ‘해빙’이 시작된 해였다. 또 그해 9월에는 전 음악계가 그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해주었고, 그에게는 레닌 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 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비교적 평이한 음악어법으로 다룬 새 교향곡의 발표는 자칫 정권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 해석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더구나 1957년 9월에 완성된 이 작품은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초연되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의 작곡 동기에 대해서 ‘러시아 역사에서 반복되는 사건’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수 세기 동안 독재자의 압제에 신음한 역사를 가졌고, 러시아의 민중은 끊임없이 압제에 저항하고 탄압받았다. 스텐카 라진과 푸가초프의 반란, 1905년의 순교, 1917년의 ‘10월 혁명’, 그리고 쇼스타코비치가 몸소 체험했던 스탈린의 철권통치 등이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반복되는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레닌을 신봉했던 사회주의자였고, 이 교향곡은 암울했던 스탈린 시절의 절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던 시기에 나왔다. 따라서 이 곡은 소련 역사의 시발점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그 상징적 사건에 바쳐진 ‘음악적 기념비’라 하겠다. |
Shostakovich Symphony No.11 in G minor, op.103 Vladimir Jurowski ·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1 Adagio (The Palace Square), |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첫 악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첫 부분은 참사가 일어나기 전 겨울궁전 앞 광장의 싸늘한 정경을 그리고 있다. 하프의 화음을 배경으로 약음기를 부착한 현악 군이 연주하는 ‘광장의 테마’로 시작되며, 이후 음산한 팀파니의 레치타티보와 불길한 신호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중간부는 침묵을 지키는 무능한 황제 밑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구슬픈 혁명가 ‘들어주소서!’에 이어 보다 억제된 분위기의 ‘죄수들’ 선율이 민중의 고통을 나직이 토로하는 듯하다. 마지막에는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
2 Allegro (The 9th of January), |
역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1부에서는 먼저 민중가 ‘오 당신! 우리의 대부이신 황제여’가 탄원하듯 흐르면서 신호나팔 소리와 함께 고조되었다가, 그것이 가라앉으면 전곡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인 ‘모자를 벗자’의 슬픈 선율이 금관 합주로 울려 퍼진다. 2부로 넘어가면 앞서 나왔던 선율들이 다시 등장하되 한층 격앙된 흐름을 보이면서 분노와 저항의 감정을 드러내고 군중의 외침, 기도, 신음, 울음 등이 떠오르는 듯하다. 돌연 폭풍 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정적이 흐르며 ‘광장의 테마’가 들려온다. 그리고 얼마 후, ‘타타타타!’ ― 갑작스런 작은북의 연타가 정적을 깬다. 이제 군대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격렬한 푸가토가 진행되며 충격과 공포에 빠진 군중의 혼란을 나타내고, 타악기들이 광포하게 질주하며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해산시키는 군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또다시 갑작스런 정적. |
3 Adagio (Eternal Memory), |
이 아다지오 악장은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추모가이다. 먼저 ‘불멸의 희생자들이여, 그대들은 쓰러졌구나’의 선율이 엄숙하게 흐르고, 중간부에서는 음울한 분위기가 흐르다가 마치 그것을 딛고 일어나듯 ‘안녕, 자유여!’의 선율이 밝은 표정으로 등장하여 감격적인 찬가로 고양되어간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는 ‘모자를 벗자’ 선율이 복수의 맹세처럼 울려 퍼진다. 마지막에는 처음의 테마가 재등장해서 자유롭게 변주되며 슬픔의 극복과 혁명의 결의를 다지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
4 Allegro non troppo (Tocsin) |
비극을 딛고 일어나 혁명을 향해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한 악장. ‘격노하라, 압제자들이여’의 선율을 금관과 목관이 힘차게 연주하며 출발하고, 이후 맹렬하게 질주하며 거침없이 타오르는 혁명의 기운을 부각시킨다. 클라이맥스에서는 다시금 ‘모자를 벗자’ 동기가 등장하고, 2부로 넘어가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군가를 연상시키는 혁명가 ‘바르샤반카’의 격앙된 선율이 행진곡으로 발전하며 결연하게 전진하는 군중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한동안 지속되던 격렬한 기세는 어느덧 흩어지고, 마침내 코다로 접어들면 실패로 막을 내린 ‘제1차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반추하는 듯한 숙연한 흐름이 떠오른다. 잉글리시 호른이 ‘모자를 벗자’의 선율을 노래하고, 마지막에는 호른의 라이트모티브 연주와 함께 의미심장한 경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렬하게 마무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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