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칸소네] Casa Bianca - Don Backy

jubila 2023. 12. 27. 00:30

Casa Bianca - Don Backy










Casa Bianca

Don Backy


C'e' una casa bianca che,
Che mai più la scorderò; 
Mi e' rimasta dentro il cuore 
Come la mia gioventù.

Era tanto tempo fa, 
Ero un bimbo e di dolore 
Io piangevo nel mio cuore: 
Non volevo entrare là. 

Tutti i bimbi come me 
Hanno qualche cosa che 
Il terror li fa tremare 
 E non sanno che cos'è. 

Quella casa bianca che 
Non vorrebbero lasciare 
E' la loro gioventù 
Che mai più ritornerà. 

E la bianca casa che, 
Che mai più io scorderò, 
Mi rimane dentro il cuore 
Con la mia gioventù. 

E mai più ritornerà.
Ritornerà.












 



 





Don Backy



1967년 이탈리아의 칸초네풍의 음악으로 우리나라에 《Don Backy》의 『눈물 속에 피는 꽃(L'immensita)』과 『하얀집(Casa Bianca)』이 들어왔지만, 크게 유행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68년도 제18회 《산레모가요제》에서 《마리사 사니아(Marisa Sannia)》가 Don Backy의 원곡인 『하얀집(Casa Bianca)』으로 참가하여 3위로 입상하였다.

이후로 세계의 유행음악이 칸초네로 서서히 바꿔지면서 어느 기간 동안 세계를 휩쓸고 다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Casa Bianca』란 노래는 크게 히트하면서 Marisa Sannia는 그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된다.

Marisa Sannia는 1947년 지중해에 있는 이탈리아에서 둘째로 큰 섬인 《사르디니아(Sardegna)》섬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섬은 우리가 잘 아는 Sicilia이고, 다음으로 큰 섬은 프랑스의 Corsica섬 바로 남쪽에 자리 잡은 Sardegna섬이다. Marisa Sannia는 바로 이 섬의 상업도시이면서 프로축구팀의 연고지로 유명한 칼리아리(Cagliaari)주의 《이글레시아스(Iglesias)》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Marisa Sannia는 이탈리아인들의 낙천적인 기질을 반영하듯, 대체로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칸초네를 많이 불렀는데, 그녀의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비록 이탈리아 가수로 밀바나 도미니크와 같은 가수들에 비해서는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칸초네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산레모 페스티벌을 통해 스타로 부각되었던 인물이다.

Marisa Sannia는 1970년과 1971년의 산레모가요제에서도 『사랑은 비둘기처럼(L"amore E Una Colomba)』와 『석양의 눈동자(Come E Dolce La Sera Stasera)』로 결선에 올라 더욱 유명해졌다.

Marisa Sannia가 부른 노래는 이 『Casa Bianca』와 같은 산레모가요제의 참가곡 외에도 『사랑의 꽃이 필 때(Quando M'Innamoro)』『속삭이는 눈동자(Gli Occhi Miei)』『안개낀 밤의 데이트(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외로운 섬(L'Isola)』『그대만을 사랑하여(Che Amo Solo Te)』『떠나려 하는 지금(Desso Si)』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다. 






'언덕위의 하얀 집' 이 노래의 의미를..........

Casabianca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1. Felicia Hemans라는 영국의 한 시인이 19세기 초 Luc Casabianca라는 사람을 두고 쓴 詩의 제목이다.
2. Luc-Julien-Joseph Casabianca는 불란서 한 해군장교의 이름이며,
그가 죽죽으면서 그의 배 L'Orient in Abukir와 12살의 자기 아들도 함께 잃는다.
3. 카사비앙카는 불란서의 한 섬 Corsica에 자리잡고 있는 집단 부락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며,
4. 또한 2차세계대전 중에 Corsica섬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입되었던 유명한 잠수함의 이름이기도 하다.


詩 Casabianca는 이렇게 시작한다.

불타는 갑판 위에 소년이 서있었네
그래서 그 소년만 놔둔채 다들 도망쳤지
전투의 잔해를 다 태워버리는 불길이
그 소년을 죽음으로 휩싸고 있었지
(The boy stood on the burning deck
Whence all but he had fled;
The flame that lit the battle's wreck
Shone round him o'er the dead.)

역사
이 시는 1798년 나일강 전투에서 불란서의 군함 L'Orient 위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기념하는 글이다. 그 군함의 지휘관이었던 Louis de Casabianca의 어린 아들
(10살, 12살, 또는 13살이었다고 여러가지로 전해진다.) Giocante는 탄약고가 폭팔해버릴지
모르는 불길이 번지는데도 그는 자기 임무자리를 뜨지 않고 고수하고 있었다.

전해지는 얘기
젊은 카사비앙카는 그의 아버지 명령없이는 조금도 자기자리를 뜨지 않는다.
(일설에는 영국군에게 배가 나포되는 걸 방해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불을 질렀다는 믿기지 않는얘기도 있다.)
그 소년은 영국 수병들에게 의해 양측면에서 공격을 받고, 발각되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얘기는 없다. 작가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기 보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기념하고 기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이어 써가고 있다.

젊고 촉망한 소년은 그대로 버티고 서있었네
마치 폭풍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영웅의 피를 이어 받은 녀석이었지
어린아이 모습이지만 자랑스런 소년,
저 아래서 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명령이 없이는
불길이 치솟아도 자리를 떠나지 않네
그러나 그 아버지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

작가는 아버지에게 지시를 내려달라고 애절하게 요청하는 대목을 가슴을 찢듯이 반복적으로 넣는다.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제 임무가 아직 남았는지...
아버지 말씀하세요! 다시 한 번 그는 소리친다. 저 언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버지, 아직 이자리를 지켜야 합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작가는 이렇게 격찬을 하며 결론을 내린다

돛대, 키, 기(旗)는 다 제자리에 그대로 이지만 사라져간 것중 가장 숭고한 것은 젊은 충성심이었지.

(Yet beautiful and bright he stood,
As born to rule the storm;
A creature of heroic blood,
A proud, though childlike form.
The flames rolled on?he would not go
Without his Father's word;
That father, faint in death below,
His voice no longer heard.
Hemans has him repeatedly, and heart-rendingly, calling to his father for instructions: "'Say,
Father, say/If yet my task is done;'" "'Speak, father!' once again he cried/'If I may yet be
gone!;'" and "shouted but once more aloud/ 'My father! must I stay?'" Alas, there is, of course,
no response.
She concludes by commending the performances of both ship and boy:
With mast, and helm, and pennon fair,
That well had borne their part?
But the noblest thing which perished there
Was that young faithful heart.)

이 시는 미국에서 1850~1950년대, 약 1세기 간에 걸쳐 초등학교 교재의 한 표본이었으며,   풍자적인 측면에서 자주 인용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