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Sergei Rachmaninov (1873~1943) |
I. Moderato, II. Adagio sostenuto – Più animato – Tempo I, III. Allegro scherzando Khatia Buniatishvili plays Filarmonica Teatro Regio Torino Gianandrea Noseda, dir.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1901년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라흐마니노프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네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널리 연주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이다. 특히 2악장과 3악장은 국내외의 많은 영화나 드라마, 텔레비전 광고에 삽입되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첫 여덟 마디] Rachmaninov, Sergei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2 in C minor, Op.18 러시아 작곡가 / 피아니스트·지휘자. 세모노보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을 거쳐서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18세 때 피아노과, 19세 때 작곡과를 졸업했다. 그 무렵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C단조》로 이름을 떨쳤으며,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도 전개했는데, 자신이 초연(初演)한 《피아노협주곡 제 2 번 C단조(작품 18, 1901)》로 글린카상을 받고 명성을 확립했다. 1904년부터 2년간 볼쇼이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며 자작 오페라《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초연했다(1906). 1906년 드레스덴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작곡한《교향곡 제 2 번 E단조(작품 27, 1907)》로 두번째 글린카상을 받았다. 1909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까지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했으며, 《피아노협주곡 제 3 번 D단조》를 미국에서 초연했다(1909). 귀국 후 17년까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조국을 탈출, 18년부터 미국에 정착하여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연주활동을 계속했으며,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에서 죽었다. 이 동안의 작품으로 《피아노협주곡 제 4 번 G단조(작품 40, 1928)》,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1934)등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은 P.I. 차이코프스키등 19세기 음악에 규범을 요구한 낭만적 색채로 시종일관되어 있어 새로움이나 심도가 부족하다고 하나, 정서적인 선율은 널리 알려져 있다.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2 in C minor, Op.18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 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라." 라는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일반에게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되고 힘찬 그러나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된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까지가 그의 작품활동의 전성기였다고 할수있다.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간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4번>, <심포닉 댄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을 작곡하게된다. 파리에 망명한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그리고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한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
Sergei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Hélène Grimaud (solist), Claudio Abbado (conductor). |
I. Moderato, |
악장을 시작하는 피아노 독주는 화음과 베이스가 마치 낮고 무거운 종소리를 연상시키며 교대로 울려 퍼진다. 섬세하고 신중하게 시작되는 타건(打鍵, keying)은 결연한 느낌과 함께 점점 강해지는데, 이렇게 피아노 소리로 만들어낸 종소리는 곡의 시작과 동시에 라흐마니노프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처럼 들린다. 이후 현악파트에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러시아의 정서를 듬뿍 머금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이어지는 제2주제는 피아노를 통해 처음 나온다. 재현부 이후 행진곡으로 등장하는 제1주제와 나른하게 등장하는 제2주제 뒤로 카덴차는 생략되고, 종결구는 다시금 힘차게 진행되어 악장을 마무리 짓는다. |
II. Adagio sostenuto – Più animato – Tempo I, |
앞선 2악장의 조성 c단조로 시작하여 관현악군의 짧은 경과구를 거친 후 곧 악장의 본 조성인 E장조로 넘어간다. 악장 중간에 경쾌한 스케르초풍의 섹션이 들어있으나 전반적으로 느리고 서정적이며 선율이 아름답다. 이 악장은 세 악장 중에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악장이다. 특히 주요 선율은 에릭 카먼의 팝송 ‘All by my self’에 사용된 것으로 유명한데, 이 팝송의 가사는 마치 창작의 고통 가운데 고독함에 몸부림치던 라흐마니노프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
III. Allegro scherzando |
이 역시 앞선 악장의 조성을 이어온 것으로, 관현악군이 춤곡풍 리듬으로 연주하는 경과구를 거쳐서 본 조성인 c단조로 이행한다. 피아노의 경과부와 제1주제를 거쳐, 제1악장의 제2주제와 긴밀한 관련을 가지는 제2주제가 등장한다. 구조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이 제2주제는 다시금 절정부에서 강조되어 등장하는데, 이때는 관현악의 합주로 나온다. 이 클라이맥스를 거쳐 음악은 C장조로 바뀌며 승리, 혹은 극복을 암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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