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그대발길 머무는 곳에 - 조용필

jubila 2024. 6. 3. 16:29

그대발길 머무는 곳에 - 조용필











그대발길 머무는 곳에


조용필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 곁에 살리라
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주오
한순간 스쳐 가는 그 세월을
내 곁에 머물도록 하여주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 곁에

아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주오
한순간 스쳐 가는 그 세월을
내 곁에 머물도록 하여주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 곁에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 곁에 살리라












 

 




 

 








1980년대가 열렸다. "1980년대가 열렸다"는 말은 곧 "조용필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왕(歌王) 조용필. 그는 낱말 뜻 그대로 가요계의 왕이었다.
1980년대 가요계를 말하면서 조용필이란 이름을 감히 비껴갈 수는 없다.
이용, 전영록, 김수철, 송골매, 구창모 같은 쟁쟁한 가수들이 왕좌에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용과 김수철의 전성기는 짧았고, 전영록과 구창모는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이 시리즈에 '단발머리'와 '창밖의 여자'가 연이어 실리는 것은 그만큼 그의 등장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80년, 조용필의 '영광의 시대'가 열렸다.


사실, '영광의 시대'는 이미 그 전에 한 번 찾아왔었다. 1975년에 취입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서였다.
부산에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노래는 경부선을 타고 서울에까지 상륙했다.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던 시절이었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가지고 최헌의 '오동잎', 송대관의 '해 뜰 날'과 함께 인기를 나눠 가졌다.
"트로트의 왕정복고"란 표현은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을 차용해 말해보자면,
1970년대 중반 세상은 트로트가 돼있었다. 트로트는 대세가 됐지만 조용필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대마초 파동'의 틈바구니에서 인기를 얻었던 조용필 자신도 1977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1979년까지 활동정지를 당한다.
와신상담. 이 사자성어가 어울리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할 당시 조용필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음악인이었다.
미8군 무대를 거쳐 김 트리오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김대환이 이끌던 밴드의 한 구성원이었을 뿐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담긴 앨범 역시도 당대 최고의 히트 메이커였던 안치행이 상당수의 노래들을 만들어줬다.
아직 온전하게 자신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과도기였다.
하지만 활동정지 기간 그는 결코 음악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았다.
그 재능과 노력은 해금조치가 이루어지자마자 '창밖의 여자'를 통해 바로 만개하였다.
거기에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표현해줄 수 있는 '위대한 탄생'을 일찌감치 만드는 혜안을 보여주기도 했다.

1집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인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모두 조용필이 만들었다.
'창밖의 여자'는 비록 드라마 주제가라는 후광을 얻기도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훌륭한 노래였다.
이 비장한 발라드는 젊은 팬들부터 중장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향후 '국민가수'로 자리매김하는 조용필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더하여 얼마 뒤
'조용필 시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명품 발라드 '비련'의 초석이 된 조용필표 비가였다.

반면 '단발머리'는 조용필이 시대의 조류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새로운 형식의 감각적인 노래였다.
이 상반된 분위기의 두 노래는 1980년대 내내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두 정서로 자리하게 된다.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를 통해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자신이 만든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를 부르는 한편으로 김희갑과 임택수, 김학송 등 기성 작곡가의 노래도 부르는 중용을 택한 조용필은 '앨범 아티스트'로서의 약점을 지적 받은 반면에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장점도 함께 평가 받았다.
록과 디스코, 발라드, 트로트, 민요 등이 두루 담겨 있는 1집은 조용필 음악인생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가지고 조용필은 198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1980년의 시작은 조용필의 시대가 열리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