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ccini Madama Butterfly, act II 'Un bel di vedremo'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중에서 "어떤 개인날
2차대전 때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나가사키.
이곳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과 글로버 공원이 있고,
공원에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역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극중 차림새로 아이를 데리고 서 있는 동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제국주의 열강에 문을 열었던 일본에서 개항과 함께 서양 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곳도 바로 이 나가사키였습니다. 서양인들이 들어오자 일본 게이샤들은 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게 되었고, 매춘과 국제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생겨났지요. 이들과 결혼까지 했다가 남자가 혼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려 버림받는 게이샤도 더러 있었습니다.
미국인 해군장교 핑커튼과 나비부인의 행복한 한 때
혼례식 중에 버터플라이의 숙부가 나타나 개종을 꾸짖으며 난동을 부리자 친척들은 다 식장을 떠나버리고, 괴로워하는 버터플라이를 달래며 핑커튼은 첫날밤을 맞이하는 사랑의 이중창을 부릅니다.
이 오페라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면서, 뚜렷이 엇갈리는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 뒤에 올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1막과 2막 사이에는 3년이 넘는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지 3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핑커튼을 버터플라이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하녀 스즈키가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남편이 돌아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단념을 권하지만, 버터플라이는 요란하게 화를 내며, 남편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담은 아리아 ‘어떤 갠 날’을 부르지요. 그러나 핑커튼은 미국에서 이미 케이트라는 미국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샤플레스 영사는 핑커튼의 편지를 들고 나비부인을 찾아오지만, 차마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편 일본인 뚜쟁이 고로는 부자인 야마도리를 버터플라이의 집에 데려오지만, 버터플라이는 기혼여성에게 감히 청혼을 하다니 무례하다며 그의 구애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핑커튼의 아들을 영사에게 보여주며 꼭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지요.
영사가 돌아간 뒤 예포 소리가 들리고 핑커튼이 탄 군함이 항구에 닻을 내립니다. 버터플라이는 감격에 겨워 온 집안을 꽃으로 꾸며놓고 밤새 남편을 기다립니다. 스즈키와 아이는 지쳐 잠이 들고 버터플라이 혼자 꼿꼿이 앉아 있는 가운데,
그 유명한 ‘허밍 코러스’가 들려옵니다. 허밍 코러스는 이탈리아어로는
‘입 다물고 부르는 합창(Coro a bocca chiusa)’입니다.
새벽이 밝아온 뒤에야 버터플라이는 잠시 방안으로 들어가 눈을 붙입니다. 그 사이 핑커튼과 케이트, 영사가 나타나 스즈키에게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핑커튼은 온 집안에 가득한 꽃들을 보고는 괴로워서 숨어버리고, 케이트는 버터플라이 앞에 나타나 아들을 친자식처럼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죠. 버터플라이는 30분 후에 핑커튼이 직접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한다고 말하고, 다들 떠난 사이에 아이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 뒤 병풍 뒤로 가서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라고 쓰여 있는 아버지의 칼로 자결합니다. 핑커튼이 돌아와 ‘버터플라이’를 외쳐 부르는 가운데 막이 내립니다.
푸치니의 신념 - 극적 충격이 공연 성패의 관건
연극 [나비부인]의 극본과 연출을 맡았던 벨라스코는 군함이 항구에 도착한 뒤 핑커튼이 집에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저녁, 밤, 새벽까지 시간을 뛰어난 감각의 조명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버터플라이 역의 주연배우를 14분 동안 정지 자세로 무대 위에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연극 무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긴 정적이죠.
푸치니는 특히 이 장면과 피날레의 자결 장면에 감격했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 뒤로 달려가 벨라스코에게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기 위한 계약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나비부인과 시중드는 수행원들이 등장하는 모습
그러나 푸치니가 엄청난 자신감으로 추진했던 1904년 라 스칼라 극장 초연은 완전히 실패였습니다. 초연 때는 2막 1장과 2장 사이에 구분이 없었는데, 관객은 2막이 너무 길어 상당히 지루해했다는 것이죠.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의 연이은 성공으로 이미 대단한 명성을 얻은 푸치니는 절대로 작품을 고치려 들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결국 2막을 둘로 나눴고 길이를 줄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같은 해 브레시아에서 재초연한 [나비부인]은 놀라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요.
푸치니는 [나비부인]에서 부분적으로 동양의 5음계를 사용하고 미국 및 일본의 국가와 민요를 인용해 넣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푸치니 시대의 작곡가들이 이해하는 ‘음악적 이국풍’은 이후 20-21세기 현대작곡가들이 관심을 갖는 ‘비서구세계 음악’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전자가 ‘단순한 호기심’이나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면 후자는 ‘공동체 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국풍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에서 출발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서양인들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시아나 동양 전체로 확대해서 바라보게 하는 오류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적 감성에 충만한 푸치니의 선율과 섬세하고 시적인 대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객에게서 매번 감동의 눈물을 이끌어냅니다. “극적 충격이 큰 작품이 아니면 처음부터 내 오페라의 소재로 택하지 않는다”고 푸치니 스스로 공언하기도 했지만, [나비부인]은 특히 연극적인 재미가 큰 작품이죠. 연출의도에 따라 다양한 자결 장면을 볼 수 있는데요, 붉은 천이나 조명을 사용해 온 무대를 핏빛으로 채우는 방식이 가장 흔합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인형극 ‘분라쿠’ 형식을 차용한 메트로폴리탄 무대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