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은 오페라 꼬미끄의 대표적인 레파토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오페라 무대에서 번번히 상연되는 아주 잘 알려진 곡이다. 메리메의 소설을 오페라화한 이 곡에서 비제는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즉 생동하는 음악성, 찬란한 악기 편성에 독특한 지방색을 가미하여 극적으로 훌륭히 처리한 것이다. 이처럼 <카르멘>은 프랑스인의 손에 의하여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기질과 그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오페라가 초연에서 실패를 보게 되고 신랄한 비평을 받게 되자 이로 인한 낙담과 정신적인 충격은 매우 컸고 비제가 사망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비제가 사망한 것은 이 곡이 초연 된 3개월 후이기는 하지만 그의 사망 원인은 과로 때문이었다. <카르멘>이 당시 파리에서 냉대를 받은 것은 그 음악 자체에 원인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즉 이 작품이 그 당시 파리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그런 부류의 음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비제는 이 곡에서 몇 개의 주요 멜로디를 되풀이해서 여러 번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 그 곳에서 지극히 멸시를 받던 바그너가 사용한 '시도동기'를 흉내낸 것이라 하여 비평가들로부터도 '바그너류'라는 신랄한 혹평을 받았다. 거기에 이 오페라가 Happy Ending도 아니며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여주인공 카르멘의 보헤미안 기질이 신사 파리쟝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리에서 냉대를 받은 이 곡은 그 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갈채를 받았고 드디어는 파리도 굴복하고야 말았다. 기록에 의하면 초연 된지 30년이 지난 1904년에는 파리에서 만도 1,000회의 상연을 돌파하였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수차 상연한 바 있다.
[초연] 1875년 3월 3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 좌에서 세계적인 초연을 하였고 동년 10월 23일 뉴욕 음악 아카데미에서 미국 초연, 동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이탈리아의 나폴리, 필렌체, 도이치의 하노바, 마인쯔, 프랑스의 리용, 보르도, 마르세이유 등에서 각각 초연 되었고, 한국 초연은 1950년 1월 27일 시공관에서 초연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