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 - 고운봉, 유주용
![]() 선창 고운봉, 유주용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나는 부둣윗가엔 이슬맺은 뱃일홍 그 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잔비만 내린다 .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의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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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가수 고운봉씨는, 본명은 고명득(高明得). 일제 말기에 발표한〈선창〉을 대표곡으로 하는 가수로, 김정구·현인·남인수 등과 더불어 서민의 애환을 달래온 대중가수 1세대이다.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당시 유명 가수들이 소속해 있던 태평레코드 전속가수로 채용되어 악극단에서 활동하였다. 1939년 일본에서 〈국경의 부두〉로 데뷔하였고, 1941년 비 내리는 쓸쓸한 부두를 배경으로 이별의 정한을 구성진 멜로디에 담은 〈선창〉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친일적 성향의 노래도 불렀으며, 광복 후 일본에 건너가 재즈와 록, 칼립소 등 미국 대중음악을 공부하다 1958년 귀국하여 〈명동블루스〉를 발표하였다. 남자 가수임에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애잔한 느낌을 주는 창법을 구사하여 '순정가수'로 불렸다. 짙은 우수를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점잖은 창법으로 깊은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았다. 〈남강의 추억〉·〈홍등야곡〉·〈명동블루스〉·〈백마야 가자〉·〈인생은 육십부터〉 등 200여 곡을 불렀고, 많은 노래가 큰 인기를 얻었다. 밝은 인상에 유머 감각이 뛰어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으며 말년까지 악극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0년 6월에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온천지구 안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매년 4월,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장래성 있는 신인가수와 전통가요 발전을 위해 〈고운봉 가요제〉가 개최되고 있다. 가수 유주용씨는, 독일계 혼혈가수로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수재로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63년 미8군 무대에서 솔로가수로 출발하여 1965년에는 최희준, 박형준, 이한필(위키리)와 포클로버스(Four Clovers)를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불량소녀 장미"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도 데뷔한다. 1968년 12월엔 윤복희와 결혼하고 1969년 5월 "부모"를 취입한다. 1973년 윤복희와 이혼한 유주용은 미국으로 이주해 재혼하여 살고 있다. 그의 누나인 가수 모니카유 또한 가수로 활동하면서 국내 원로 째즈 연주자인 엄토미씨와 결혼한 연예인 가족이기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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