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 - 김민기
아침이슬 김민기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1971년 6월30일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왔다. ‘아침이슬’은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다. 엄혹하고 암혹한 군사독재 시절 많은 이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 ‘아침이슬’ 50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강헌(59)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지난 7일 경기도 수원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이슬’은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포크송으로, 양희은의 가수 데뷔곡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를 은유하는 듯한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1975년 금지곡이 된 뒤 5공화국 시절까지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물결과 함께 민중가요의 대표곡으로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강 대표는 ‘아침이슬 50주년’ 이야기를 하다 “내 인생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며 ‘가왕’ 조용필과 ‘민중음악의 거인’ 김민기 얘기를 꺼냈다. 1950년생 조용필, 1951년생 김민기. 비슷한 나이로 동시대를 살았지만, 노래 결이 달랐던 그들을 연결해준 건 ‘아침이슬’이었다. “1997년 엄청 추운 겨울날이었죠. 용필이 형과 술 한잔 할 때였습니다. 문득 가왕 조용필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형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는 누군가요?’라고 물어본 거죠. 속으로는 신중현이나 김홍탁을 얘기할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깜짝 놀랐어요.” 강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용필이 형이 말한 사람은 김민기였습니다. 예상을 못한 답이라서 충격이었죠. 그래서 ‘잘 아세요?’ 물었더니 ‘본 적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왜 존경하는지 궁금해서 물으니 ‘신념을 가진 예술가들은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감동이었습니다.” 강 대표는 ‘김민기를 만난 적 없는 조용필’과 ‘조용필을 만난 적 없는 김민기’를 위해 만남 자리를 주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옳다구나 싶어 두 사람 만남을 주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손바닥도 마주쳐야 하니, 민기 형한테도 물어봤죠.” 얼마 뒤 강 대표는 서울 대학로 극단 학전 근처 술자리에서 김민기를 만났다. 그때 이렇게 물었다. “‘민기 형, 조용필 어떻게 생각해요?’ 또 한번 놀랐죠. 민기 형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싫어한다고 말할 줄 알았지? 실은 나 조용필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김민기는 “시인 김지하가 서대문 교도소에서 갇혔을 때 ‘조용필 노래를 듣고 큰 위안을 받았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김민기는 조용필 노래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강 대표가 제안했다. “그럼 만나보시겠습니까?” 김민기가 답했다. “좋지.” 그 뒤 강 대표가 만남을 주선했다. 조용필이 한살 많으니 그의 ‘구역’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조용필이 살던 서울 방배동에 있는 한 일식집이었다. 1997년 12월 어느 날, 김민기와 강 대표는 대학로 극단 학전 앞에서 택시를 타고 방배동으로 향했다. 강 대표는 택시 안에서 걱정이 됐다고 했다. 주선자는 ‘누가 술값을 내느냐’ ‘누가 먼저 나와 맞이하느냐’ 같은 ‘디테일’을 미리 정리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나이도 비슷하고 ‘가왕’과 ‘거인’이다 보니 미처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택시 안에서 김민기가 입을 열었다고 했다. “서로 말 없이 택시 안에 있었는데, 반포대교 중간쯤에서 민기 형이 ‘오늘 술값은 내가 낸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뜬금없어서 ‘형, 오바하지 마’라고 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사실은 민기 형이 ‘그만 돌아가자’고 할까봐 내내 걱정했죠. 그만큼 부담스러운 자리였으니까요.” 강 대표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다시 한번 놀랐다고 했다. “용필이 형과 민기 형이 나이도 비슷해서 (누가 먼저 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각에 보기로 했죠. 근데 식당에 도착해서 또 한번 놀랐어요. 조용필이 먼저 와서 방에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두 사람이 만난 분위기는 어땠을까?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대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자리 공기는 지금도 기억나죠. 두 사람이 악수하고 자리에 앉은 뒤 어색한 침묵 속에 시간만 ‘똑딱똑딱’ 흘렀죠. 앉자마자 소주 10병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요. 한시간쯤 지나자 두 양반이 술김에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는데요. 대개 선문답 같은 얘기만 오갔던 것 같아요. 소주 22병을 마신 뒤 음식점 문도 닫아야 해서 나왔죠.” 2차 없이 그냥 헤어졌을까? “2차 장소를 안 정하고 무작정 나와 그냥 헤어질 뻔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욕이 튀어나올 만큼 엄청 추웠던 거죠. 마침 그 근처에 1970년대식 카페가 있었어요. 셋이서 곧바로 들어갔죠.” 허름한 룸이 있던 카페에서 양주 한병을 놓고 ‘원샷’ 몇차례 한 뒤 또 침묵이 흘렀다. “그때 용필이 형이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구석에 있던 낡은 노래방 기기 앞에 쪼그려 앉더니 번호를 직접 꾹꾹 누르는 거예요. 용필이 형이 마이크를 잡고 부른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이었죠. ‘벙찐’(어안이 벙벙한) 민기 형이 깜짝 놀라 용필이 형을 쳐다보았고요.” 강 대표는 그때가 생애 최고의 시간이라고 했다. “용필이 형이 민기 형 앞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던 그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날 밤 조용필이 김민기 앞에서 ‘아침이슬’을 부른 그때였습니다.” 강 대표는 이게 끝이 아니라고 했다. 좀 더 남아 있다고 했다. “당시에도 인기 가수였던 용필이 형은 1천여명 이상 들어가는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콘서트를 했어요. 제가 제안 하나를 했죠. 대형 공연만 할 게 아니라 팬을 위해 이마에 흐르는 땀까지 볼 수 있는 소극장에서 공연해보라고요. 용필이 형이 의외로 ‘그래, 그럼 해보지, 뭐’라고 했어요.” 그래서 조용필은 대학로 근처 5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첫날 리허설이 끝나고 김민기가 찾아왔다.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학전과 50m 정도 떨어진 소극장이었죠. 대학로는 민기 형 ‘구역’이니, 이번엔 민기 형이 먼저 다가온 거였어요. 용필이 형이 지난번에 자신의 ‘구역’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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