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행복의 일요일 / 송민도

jubila 2024. 1. 25. 03:02

행복의 일요일 / 송민도












행복의 일요일

송민도


 
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으로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꺼나
하늘엔 흰 구름도 둥실 춤추고
흐르는 시냇물은 맑기도 한데
송사리 숭어떼가 물장구친다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꽃이 핀다
가슴에 꽃이 핀다

실버들이 늘어진 우이동으로
그대 손을 잡고서 걸어갈꺼나
그늘숲 파랑새가 노래를 하고
나리꽃 하늘하늘 반겨주는데
일곱 빛 무지개가 아롱거린다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꿈이 핀다
곱게도 꿈이 핀다

벌거숭이 뛰노는 광나루가로
그대 손을 잡고서 노저어 갈꺼나
은구슬 부서지는 뱃머리에는
연분홍 꽃잎들이 휘날리는데
물제비 살랑살랑 나래를 친다
행복의 일요일은 사랑의 싹이 튼다
살며시 싹이 튼다












 

 







 

 











송민도는 1925년 경기도 수원군에서 감리교 목회자의 딸로 출생했다. 성장기에는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 평안남도에서 삼화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나왔다.

학교 졸업 후 만주의 룽징에서 잠시 유치원 보모로 일하다가 결혼하여 옌지로 이사했다. 옌지에서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아 1945년에 가족과 함께 서울 돌아왔다. 가수 활동은 1947년에 한국방송공사 전신인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하여 1기생으로 발탁된 것이 시작이다.
데뷔곡으로 취입한 〈고향초〉가 널리 알려지면서 송민도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음반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여성스럽게 바꾼 송민숙이라는 예명으로 발표되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고향초〉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고, 선배 가수인 장세정이 다시 취입하여 널리 알려졌다.
한국 전쟁 중에는 대한민국 국군 정훈공작대에 소속되어 위문공연 활동을 하였고, 종전 후 〈나 하나의 사랑〉과 〈청실홍실〉이 크게 히트하여 195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여가수로 부상하였다. 이 가운데 〈청실홍실〉은 대한민국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이다. 1960년대에도 〈카츄샤의 노래〉, 〈목숨을 걸어놓고〉, 〈여옥의 노래〉, 〈서울의 지붕 밑〉, 〈하늘의 황금마차〉, 〈청춘목장〉, 〈행복의 일요일〉 등의 히트작을 계속 내놓았다.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 창법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목소리는 잔잔한 서구식 저음이다. 미성의 가수들이 많던 시기라, 송민도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젊은층과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한민국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63년부터는 쇼단을 경성하고 단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에 장남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사이공에 식당을 차리고 머물렀다. 사이공을 떠나면서 1971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생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