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이름 모를 소녀 - 김정호

jubila 2024. 3. 12. 13:32

이름 모를 소녀 -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

김정호



버들잎 따다가 연못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속에

달빛젖은 금빛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속에 떠나가는 이름모를 소녀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1974)
독창적으로 슬펐던 뮤지션이 남긴 발라드의 원형
1971년과 1972년에 걸쳐 김민기, 양희은 등 포크의 거장들이 출현했지만 TV 속 세상은 여전히 이미자와 나훈아로 대표되는 트로트 천하였다. 균열이 일어난 건 1973년이었다. 청년층의 지지를 얻어낸 통기타 포크는 트로트 이외의 것을 들려주고자 했던 뮤지션들과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그 열망의 산물은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만큼 눈부시게 진화했다. 이장희의 ‘그건 너’가 1973년의 대표자라면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는 1974년을 대표하는 포크의 돌연변이였다.


김정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어니언스의 데뷔 앨범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임창제의 곡이라 적혀있던 ‘작은 새’, ‘사랑의 진실’, ‘저 별과 달을’, ‘외기러기’, ‘외길’ 5곡의 원작자로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어니언스의 대표곡은 ‘편지’였지만 사람들은 그가 창조해낸 민요와 국악과 포크의 절묘한 융합에 매료되었다. 이듬해 그가 어니언스에게 주었던 곡들과 신곡을 섞어 자신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깊이가 달랐다. 그가 직접 부르는 노래는 새로운 차원의 절창이었다. ‘이름 모를 소녀’에는 실로 김정호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팝의 일반적인 진행방식을 따르지 않는 곡 구조, 통기타의 느슨한 리듬, 불분명하면서도 신비로운 버스(verse)의 멜로디, 끊어져버릴 듯 절절한 후렴, 어렴풋이 느껴지는 민요 혹은 국악의 향취가 서로를 은밀히 공유했다. 곡을 이토록 애달프게 만들어놓고서 그는 무대 위에서 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기로의 몰입, 비탄의 극한을 향해 치닫는 모습이었고, 지금껏 가요의 역사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변진섭과 신승훈과 윤종신의 음악적 선조로 김정호를 곧장 연결시키는 건 무리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정서적 측면에서 그는 한국 발라드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