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 정훈희
무인도 정훈희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울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우~ 우 |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 잘하네." 1967년 당시 최고의 작곡가이던 이봉조가 17살 정훈희의 노래를 듣고 처음 던진 말이다. 서울 남대문 인근 호텔의 나이트클럽. 여름방학을 맞아 부산에서 상경한 정훈희는 나이트클럽 악단장이던 작은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줄리 런던의 '러브 레터(Love Letter)'. 당시는 20~30대 미8군 가수들만 팝송을 부를 줄 알던 시절이다. 클럽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던 이봉조는 노래 소리에 이끌려 클럽을 찾았고 여고생이 부르는 재즈풍의 발라드에 반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색소폰 연주곡으로 발표했던 '안개'의 LP를 건네며 "집에 가서 멜로디를 외워오라"고 했다. 2~3주 뒤, 이봉조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인 탓에 야간 녹음을 하기위해 순경을 앞세우고 정훈희를 데리러 왔다. 정훈희는 처음 찾은 스튜디오에서 신성일, 윤정희 주연 영화 '안개'의 주제곡인 '안개'를 릴테이프에 녹음했다. "일단 KBS, MBC, 동아방송에 보내기 위해 데모 음반으로 세개의 릴테이프에 녹음했어요. 릴테이프는 복사가 안되잖아요. 방송 3사에 갖다줬는데 테이프 쟁탈전이 벌어졌대요. PD들이 빨리 취입하라고 아우성이어서 며칠 만에 다른 노래를 10곡 더 녹음해 재킷 사진도 못 찍고 첫 음반을 냈어요. 40만장이 팔렸죠. TV는 동네에 한 대, 피아노는 구에서 한 두 대, 200만~300만원이면 집 한 채를 살 때였는데 전축없는 사람들도 음반을 샀다는 얘기죠. 전 진짜 신데렐라였어요." 정훈희... 비음의 미성을 가지고 1960년대 말에 데뷔해 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후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가 대표급 여가수다. 199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조관우의 ‘꽃밭에서’와 2007년 사랑받은 랩그룹 45RPM의 ‘살짝쿵’이 바로 그의 오리지널 곡이기도 하다. (살짝쿵의 원곡은 그 사람 바보야 이다) 그녀는 정확한 음을 바탕으로 고음구사도 빼어나 활동 당시 ‘한국의 다이애나 로스’로 통했다. 40년 전인 1967년에 지금도 기성세대에게 그의 대표곡으로 인식되어 있는 ‘안개’로 데뷔했고 이후 ‘강 건너 등불’ ‘별은 멀어도’ ‘사랑이 미움 되면’ ‘꽃길’ ‘꽃봉투’ ‘그 사람 바보야?‘풀꽃반지’ ‘나오미의 꿈’ ‘진실’ ‘빗속의 연인들’ 등 음악 팬들을 사로잡은 숱한 히트송을 쏟아냈다. 2008년, 오랜 준비 끝에 ‘삐삐코로랄라’, 인순이와 호흡을 맞춘 ‘No love’ 등이 수록된 40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해 빼어난 가창력을 과시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 1970년대에 음악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제도권 행사인 이른바 국제가요제에 첫 입상 가수이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가수이기도 하다. 정훈희 자신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력이다. 1970년 42개국이 참여한 일본 도쿄 야마하 가요제에서 ‘안개’로 입상했으며 이듬해 그리스 국제가요제에서는 ‘너’라는 곡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2년에는 또 한 차례 도쿄 야마하에서 ‘좋아서 만났지요’로 가수상을 수상했고 1975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무인도’로 3위와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상기한 곡 전부를 전설의 작곡가 고 이봉조씨가 썼다) 당시 현지에서 장출혈과 신경쇠약으로 입원한 정훈희에게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이 화환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꽃밭에서’는 1979년 다시 참가한 칠레가요제의 입상 곡. 최고가수상을 받았지만 대마초파동 여파로 조용히 다녀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인 부친 정근수씨, 밴드마스터였던 삼촌 근도씨는 물론이요, 큰오빠 운택씨 등 오빠 넷이 모두 색소폰이나 기타를 연주하며 밴드에서 활동한 음악집안에서 성장했다. 운택씨 소개로 부산여상을 다니던 1967년 나중 필생의 음악파트너가 된 작곡가 이봉조씨를 만나 ‘안개’를 취입하며 데뷔했다. 이후 ‘강 건너 등불’ ‘별은 멀어도’ ‘사랑이 미움 되면’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했고 미모 덕분에 동료가수 배호와의 염문설 등 스캔들도 풍성했다. 가요제 연속 입상, TV 무대 장악 등으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 입건되면서 활동 정지를 당했다. 76년 임희숙 등과 함께 해금이 되었지만 TV에 나올 수 없었고 이후 재기무대도 성공적이지를 못했다. 1978년 ‘꽃밭에서’를 마지막으로 독집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 1980년 록 밴드 ‘라스트찬스’의 리더인 김태화씨와 약혼했고 성격차와 정훈희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해 1983년 아들을 낳았다. 남편과 함께 음악활동을 재개, 1989년 둘째 아이 만삭상태에서 듀엣으로 녹음한 ‘우리는 하나’를 내놓았다. 2008년 40주년 기념앨범은 독집으로는 무려 30년 만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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