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탱고 - 송민도
나의 탱고 강탁수 작사/ 한복남 작곡 송민도 1. 즐거운 날의 꿈이여 나의 탱고여 물새 우는 강언덕을 헤메이면서 그대를 부르면은 나를 부르네 아 ~ ~ ~ 첫사랑 젊은 날의 나의 탱고여 2. 지나간 날의 꿈이여 나의 탱고여 흘러가는 강물 위에 낙엽 잎 하나 그대는 어데 가고 나 혼자만이 아 ~ ~ ~ 추억은 애달퍼라 나의 탱고여 |
감리교 목회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947년 KBS(당시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생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결혼한 몸으로. 그야말로 파격중에서도 또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그해 데뷔곡은 '고향초'로 '청실홍실' '카츄샤의 노래' '하늘의 황금마차' '청춘목장' '행복의 일요일' 등의 히트작을 내놓았다. 데뷰곡인 ‘고향초’는 3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들 사이에 유행했었다. 나 하나의 사랑은 1955년에 발표. 그녀는 노래를 부를 때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은 그야말로 고운 목소리를 낸다. 그녀는 허스키하고 지성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모든 여성가수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승부하던 그런 시절에 그녀는 등장했다. 첫 곡을 내면서 음반사측에서 ‘민도’가 남자 이름이라며 한 때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목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하늘 민(旻), 길 도(道), 즉 ‘천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라 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1963년,그녀는 남일해, 고대원을 비롯 무용단, 밴드 등을 합쳐 모두 25명 으로 ‘백만불쇼단’을 결성했지만 결국 5년 후에 접었다. 그 해 청룡부대로 월남에 파병된 장남의 소식이 두 달 넘도록 끊기자 그녀는 아들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다.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에서 한국식당을 차려 3년 반 동안 사이공에서 체류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갔다. 당시, LA 오렌지카운티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교통사고로 몸이 매우 불편하다고 전해진다. TV가 없고 라디오에서 목소리만 듣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197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였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부인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노래가 바로 그녀가 부른 최고의 히트곡, '나하나의 사랑'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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