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깐시온] Jurame - Julio Iglesias

jubila 2024. 6. 25. 09:58

Jurame - Julio Iglesias












Jurame
(약속해 줘요)

Julio Iglesias



Todos dicen que es mentira que te quiero
porque nunca me habían visto enamorado.
Yo te juro que yo mismo no comprendo
el porqué me fascina tu mirada.
Cuando estoy cerca de ti, tú estás contenta.
No quisiera que de nadie te acordaras.
Tengo celos hasta del pensamiento
que pueda recordarte a otra persona más.
Júrame que aunque pase mucho tiempo no has de olvidar
el momento en que yo te conocí.
Mírame, pues no hay nada más profundo ni
más grande en este mundo que el cariño que te di.
Bésame con un beso enamorado,
como nadie me ha besado desde el día en que nací.
Quiéreme, quiéreme hasta la locura y así sabrás
la amargura que estoy sufriendo por ti.
Todos dicen que es mentira que te quiero...
No quisiera que de nadie te acordaras.
Tengo celos hasta del pensamiento que
pueda recordarte a otra persona más.














 




 

 





Julio Iglesias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는 프리 올림픽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하기도 했던 훌 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여성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갈채를 받고 있는 스페인어권 출신 가수이다.


60여 장에 달하는 독집 앨범과 6개 국어로 발매된 히트 앨범, 1억 2,000만 장의 누적 판매고를 올리며 매 30초마다 전 세계 라디오 방송국에서 훌리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환자였는데 불굴의 의지력을 갖고 정상인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간 승리’의 신화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친, 스페인 유명 작가의 딸 사이에서 출생한 훌리오는 양친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어려서부터 밖으로 떠돌아다니는 문제아였다.

“집안에 들어오면 싸늘한 냉기가 돌았죠. 화목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방과 후 거리를 쏘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 12살 때 우연히 교내 합창단 단원 모집 시험에 응모한다.

그때까지 그는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음악 쪽으로는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곡조조차 맞추지 못하는 훌리오의 노래를 듣고 있던 심사 위원 한 사람이 “애야, 차라리 너는 축구 선수나 해라!”라는 비아냥거림을 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멸조로 던진 심사위원의 이 말은 그의 초반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그는 곧바로 유소년 축구팀에 가입한 뒤 스페인 축구 지망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레알 마드리드팀의 골키퍼로 활약한다. 축구선수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던 그에게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19살 되던 9월, 친구와 마드리드 근교에서 벌어진 마을 축제에 참가한 뒤 귀가하다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사고 직후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고 생각한 뒤 별다른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1개월 뒤, 그는 보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느낀다.

2월 눈 오는 어느 날, 거리에 쓰러진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된다. 20살 되던 1월 6일, ‘사고로 인한 하체 부분 내출혈, 그로 인한 척추 압박’이라는 의사 소견을 듣는다. 의사들의 검진 이후 그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된다.

결국 그후 황소처럼 튼튼한 다리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훌리오의 두 다리는 완전 마비된다.

“병실에 있으면서 ‘왜 하필 나인가’라는 분노감에 휩싸였죠. 20살의 내 인생이 이제 불구로 시작된다는 절망감과 함께요.”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근 1년 동안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아들 훌리오를 간병한다.

병세에 차도가 없자 아버지는 근무를 마치면 병상의 아들을 찾아와 그 다음날까지 함께 하는 고단한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격려의 말을 보낸다. 이때 아버지가 자주해주던 말이 있었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설사 하반신 마비 환자로 전락하더라도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라는 무언의 충고였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는 척추가 절단된 것이 아니고 상흔만 입은 압착의 경우 꾸준한 운동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훌리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어스름한 저녁 무렵부터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지팡이를 짚고 병원 정원을 오가는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굳어가는 하반신 상태를 차단하기 위해 하루 6시간 정도의 수영을 병행한다.

고단한 재활 과정에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버지가 적절함을 달래주기 위해 갖다 놓은 기타와 악보.그는 그때까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고 노래 실력은 이미 합창단원 응모 때 밝혀졌듯이 거의 완벽한 음치에 가까웠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악보를 보고 독습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병상 생활은 3년째로 접어들었다. TV에서 방송되는 가요 프로그램을 듣고 가수의 음정에 맞추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음악 축제 다큐멘터리를 본 훌리오는 아버지에게 “저 2년 안에 저 축제에 참석해서 반드시 노래를 부르겠어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웃었다.

그런데 웬걸 사고 후 5년 만인 24세 생일, 그는 기적적으로 정상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국 캠브리지로 유학한 그는 방과 후 클럽에서 학비도 벌겸 재미 삼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장래 희망은 변호사를 꿈꾸고 있었다.

1968년 자신의 노래 실력을 공식적으로 검증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페인 베니돔 송 페스티벌에 참가했는데 덜컥 최우수상에 입상된다.

참가곡으로 불렀던 노래가 병상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격려의 말을 모티브로 해서 스스로 작사, 작곡한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La Vida Sigue Igual.’

페스티벌 이후 개최된 모든 음악상에 이 곡은 단골 수상곡으로 추천되는 동시에 싱글 발매 이후 단 2주 만에 스페인 최고 인기곡이 된다. 마침내 ‘그래도 인생’은 스페인 국가처럼 애창됐고 조금 과장하자면 길 가던 강아지도 따라 부를 정도였다.

정식 데뷔로 기록되고 있는 1968년 이후 30여 년 이상 톱 가수로 전 세계 순회공연을 지속하고 있는 훌리오. 자칫 불구 청년으로 마감했을지도 모를 인생은 부친의 끊임없는 격려와 기타 선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늘 되뇌는 포부가 있다.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무대 위에서 죽고 싶습니다. 서 있는 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