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님(창살 없는 감옥) - 박재란

jubila 2024. 1. 22. 01:07

님(창살 없는 감옥) - 박재란










(창살 없는 감옥)


박재란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왜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못 맺을 운명 속에 몸부림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서로 만나 헤어진 이별이건만
맺지 못할 운명인가 어이 하려나
쓰라린 내 가슴은 눈물에 젖어
애달피 울어봐도 맺지 못할 것
차라리 잊어야지 잊어야 하나











 

 




 

 










1938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박재란(본명 이영숙)' 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그녀는 백난아의 '망향초 사랑'을 즐겨 불렀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무대에 올랐다.


'박재란'의 재능을 알아본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의 추천으로
그녀는 육군 본부 산하 군예대 3기생으로 발탁되어 대구에서 첫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


군예대 시절을 거쳐 첫 히트곡 '럭키 모닝' 발표 때까지
그녀는 희망악극단, 무궁화악극단, 반도악극단 등, 악극단 무대에 섰다.


바이브레이션이 거의 없는 깨끗한 창법이 특기인 그녀는 1960년대 이미자와 더불어
‘꾀꼬리 가수’의 대표 주자였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57년에 정식 가수로 데뷔하였고 이후 '뜰 아래 귀뚜라미', '럭키 모닝', '님(창살없는 감옥)',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산넘어 남촌에는' 등을 비롯한 많은 노래들이 히트하였다. 번안곡으로는 '진주 조개잡이', 영화 주제가로는 '강화 도령'과 '푸른 날개' 등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재란'은 트로트 가수로 알려졌지만, 실은 자신만의 창법으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탁월한 보컬리스트였다.
그녀가 유성기 시대부터 LP 시대에 이르기까지 발표한 히트곡의 리듬과 템포는 팔색조처럼 다양하다.






창살없는 감옥 (님)

이노래는 반공영화가 만들어 지고 그 영화의 주제가가 되었다.
본의 아닌 살인으로 고뇌에 쌓여 괴로워하던 중, 그는
주위의 감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유격대 지원 입대한다,


유격대원이 된 그는 군무에 충실하는 한편 한 여인을 사귀어 열열히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이때까지도 전직 형사의 끈덕진 미행으로 항상 불안과 초조 속에지낸다.
창살이 있어야만 감옥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침내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중 장열한 전사로써 속죄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바로 이노래~창살없는감옥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며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