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밤에 떠난 여인 - 하 남석

jubila 2024. 1. 23. 01:02

밤에 떠난 여인 - 하 남석










밤에떠난 여인

하남석


하얀 손을 흔들며 입 가에는 예쁜 미소 짓지만
커다란 검은 눈에 가득 고인 눈물 보았네
차창가에 힘 없이 기대어 나의 손을 잡으며
안녕이란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서 우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 기약도 할 수 없는 이별
그녀의 마지막 남긴 말 내 맘에 내 몸에 봄 오면


그녀 실은 막차는 멀리멀리 사라져 가 버리고
찬 바람만 소리내어 내 머리를 흩날리는데
네가 멀리 떠난후 나는 처음 외로움을 알았네
눈물을 감추려고 먼 하늘만 바라 보았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 기약도 할 수 없는 이별
그녀의 마지막 남긴 말 내 맘에 내 몸에 봄 오면

예전에는 너와나 다정스런 친구로만 알았네
네가 멀리 떠난 후 사랑 인줄 나는 알았네
네가 돌아오는 날 나는 너를 맞으며 말 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말을 할테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 기약도 할 수 없는 이별
그녀의 마지막 남긴 말 내 맘에 내 몸에 봄 오면














 

 




 

 











하남석(본명 김홍규)과 친형 하남궁(본명 김영규)은 1970년대에 부드러운 미성의 형제 가수로 화제를 모았다.
하남궁은 매트 먼로(Matt Monro)의 팝송 <music played>를 번안한 <음악이 흐르는데>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하남석은 라디오 방송으로 팝송을 접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가수 활동을 했던 형의 영향을 받았지만 직업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기에 데뷔가 늦어졌다.
명지대 영문학과에 다니다 군복무를 마친 1973년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유명 클럽에서 노래하다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 형을 대신해 노래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준비 없이 시작한 가수 활동이었지만 부드러운 미성으로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서울 명동의 유명 클럽 무대에 진출했다.
그곳에 손님으로 왔던 작곡가 김성진의 추천으로 데뷔 앨범을 제작할 기회가 찾아왔다.

1974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하남석의 데뷔 앨범에서 김홍규는 형의 예명을 따라 본명 대신 하남석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 앨범 제작을 주선한 작곡가 김성진의 곡이 절반을 넘는 6곡이며, 타이틀곡 <밤에 떠난 여인>도 그의 곡이다.

하남석의 대표곡이 된 <밤에 떠난 여인>은 당시로서는 꽤 긴 4분 4초의 곡으로, 3분이 넘는 노래는 방송에서 잘 틀어주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바람에 실려>가 가장 먼저 히트했다.
이 노래는 1966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루 크리스티(Lou Christie)가 불러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팝송 <SADDLE THE WIND>을 번안한 노래였다.
앨범 발매 후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던 이 노래는 원곡을 능가한다는 호평을 들었다.
하남석의 자작곡 <잊지 않으리>는 이 앨범에서는 히트하지 못했고, 이후 발매한 앨범에 다시 수록해 히트했다.
번안곡 <바람에 실려>의 히트로 유명세를 탄 하남석은 TBC 라디오 DJ로 발탁됐다.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으로 진행한 방송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뒤늦게 <밤에 떠난 여인>이 각 방송과 잡지의 인기 가요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진지하고 애절한 하남석의 창법은 이별하는
여인의 눈물이 젖어든 듯한 가사와 어우러져 듣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했다. 이 노래는 작곡가 김성진이 총각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하는 장면을 스케치한 곡이었다.
당시 결핵에 걸려 요양을 떠나는 여자 친구와 기차역에서 헤어지기 아쉬웠던 그는, 여자 친구와의 이별 모습을 팝 스타일의 노래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