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Baroque

[왈츠] 요한 스트라우스 II 세 왈츠

jubila 2024. 7. 1. 06:22

요한 스트라우스 II 세  왈츠 




Johann Strauss II  waltz
요한 스트라우스 II 세  왈츠 

Johann Strauss II,(1825~1899)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

André Rieu
Johann Strauss Orchestra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1867)
Künstlerleben (Artist's Life), Op 316
 예술가의 생애 (1867)
"Tales from the Vienna woods" Waltz Op. 325
 빈 숲 속의 이야기 (1868)
Wein, Weib und Gesang, Op.333
술과 여자와 노래 (1869)
Rosen aus dem Süden, Op. 388
남국의 장미 (1880)
Frühlingsstimmen,(Voices of Spring). walzer op. 410 
봄의 소리 (1882)
Kaiser-Walzer (Emperor Waltz) Op. 437
황제 원무곡 (1888)





슈트라우스를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똑같다는 것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II세는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요한 슈트라우스 I세의 아들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I세는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기 알아보고 훗날 대 음악가로 성공하기까지 지극 정성으로 그를 키워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다를게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25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우어리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왈츠로 이름을 날리던 요한 슈트라우스였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은행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아버지 악단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하지만 어느 날 몰래 바이올린을 연습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심하게 매를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에밀리 트람푸쉬라는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덕분에 그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마음껏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대의 유명한 선생들에게 대위법과 화성학, 바이올린을 배운 그는 빈에서 전문 연주자로 공연할 수 있는 자격증을 얻었다. 그리고 연주자들을 모집해 자신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의 활동은 쉽지 않았다.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아버지의 방해 때문이었다.
슈트라우스는 빈 근교 힐칭에 있는 돔마이어 카지노 책임자를 설득해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따냈다. 1844년 10월, 돔마이어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졌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평가와 언론으로부터 아버지의 명성이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1848년 3월,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정치에 대항하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이때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는 정치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아버지는 보수파로 정부 측에 가담하여 이탈리아 독립 운동을 진압한 오스트리아의 영웅 라데츠키 장군을 기리는 행진곡을 작곡한 반면, 아들은 공화주의자 편에 서서 혁명을 찬양하는 폴카와 행진곡을 작곡했다. 작곡가로서 이런 태도는 엄청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시민혁명이 일어나 군중이 궁전까지 포위하자 황제는 시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상인 메테르니히는 런던으로 망명했고, 이와 더불어 정부 편에 섰던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입지도 좁아졌다. 반혁명적인 작곡가라는 낙인이 찍혀 더는 빈에서 살 수 없게 되자 런던으로 몸을 피했다. 이듬해인 1849년에 그의 아버지는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직전에 아들과 화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의 악단과 자신의 악단을 합쳐 더 큰 악단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아들의 명성이 아버지의 명성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된 그는 1853년에 빈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 자리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국내는 물론, 멀리 해외에까지 퍼졌다. 1854년에는 러시아 철도 회사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여름 피서지 파브로프스크에서 매년 지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855년부터 15년 동안, 그는 매년 봄에 러시아로 가서 지휘봉을 잡았다. 이 자리에서 동생 요제프와 합작으로 작곡한 〈피치카토 폴카(Pizzicato―Polka)〉를 비롯해 〈크라프펜의 숲에서(Im Krapfenwald)〉, 〈파브로프스크의 숲에서〉 등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
1862년, 슈트라우스는 제티 트레페츠라는 성악가와 결혼했으며, 이듬해에는 빈 궁정 무도회 악장이 되었다. 이 자리는 오래전부터 그가 원하던 자리였다. 그래서 여러 차례 도전을 했지만 궁정 관계자와 충돌을 빚는 바람에 매번 거절당했다. 그런데 마침내 소원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매우 바쁘고 힘든 일이어서 곧 건강에 이상이 왔다. 과로로 신경계통에 병을 얻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견디다 못한 슈트라우스는 7주간의 휴가를 내고 빈 근교의 전원으로 요양을 떠났다. 이때 그의 가족들은 그에게 휴식을 권유했다. 하지만 악단을 대신 맡을 사람이 없었다. 그의 동생 요제프는 음악가가 아닌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악단을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는 결국 악단을 동생 요제프에게 넘기고 그때부터 작곡에만 전념했다.
1870년부터 슈트라우스는 빈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무렵 밴드마스터 패트릭 길모어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음악제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를 비롯한 자작곡을 지휘하기도 했다.
1878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슈트라우스는 배우 안젤리카 디트리히와 재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관심도 없었다. 종종 분별없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슈트라우스는 그녀와 이혼하기를 원했지만, 가톨릭에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종교를 바꾸고, 국적도 독일로 바꾼 끝에 겨우 이혼할 수 있었다.
1882년, 슈트라우스는 아델레 도이치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다행히 그녀는 남편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런 아내 덕분에 슈트라우스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899년 늑막염에 걸려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두 사람이 같은 이름을 사용했는데, 아버지는 '왈츠의 아버지', 아들은 '왈츠의 왕'으로 불린다.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기초를 닦았고,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왈츠를 더욱 발전시켜 빈 왈츠를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왈츠는 본래 춤 반주 음악이었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의해 편성이 큰 연주회용 무곡으로 발전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1867년 그가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 일하고 있을 때 썼다. 느리게 연주하는 전주에 이어 다섯 개의 왈츠가 차례로 나온 다음 다시 전주와 같은 멜로디의 후주로 들어간다. 마지막에 짧지만 화려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
한편 또 다른 대표곡인 〈봄의 소리(Frühlingsstimmen)〉 왈츠는 1882년 오페레타 〈유쾌한 전쟁 부다페스트〉를 지휘하기 위해 헝가리로 갔을 때 한 연회장에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것이다. 본래 소프라노 독창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요즘은 관현악 편곡으로 더 자주 연주된다. 때로는 소프라노 독창에 관현악 반주를 붙이기도 한다. 곡은 네 마디의 짤막한 전주로 시작한다. 이어 본격적인 왈츠가 시작되고, 세 개의 작고 우아한 왈츠가 연달아 나온 다음 마지막에 첫 왈츠의 주요부를 재연한 후 끝을 맺는다. 환희에 넘치는 봄을 상기시키는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곡이다.
1870년대부터 슈트라우스는 빈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박쥐(Die Fledermaus)〉는 그중 대표작으로 1896년에 초연되었다. 시장을 모욕한 죄로 감옥살이를 할 처지에 놓인 아이젠슈타인 남작이 감옥에 간다며 아내 로잘린데를 속이고 무도회장으로 간다. 하녀 아델레 역시 친척의 병문안을 간다는 핑계로 무도회에 간다. 하지만 로잘린데는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등장한다. 결국 같은 무도회장에 남작과 로잘린데, 아델레가 모두 각자의 신분을 속인 채 모이게 된 것이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백작의 친구 팔케의 계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모두가 서로를 용서하며 즐겁게 끝을 맺는다.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오페레타의 주요 멜로디를 엮어 놓은 〈서곡〉, 하녀 아델레가 자기 신분을 의심하는 남작 앞에서 부르는 〈여보세요. 백작님(Mein Herr Maquis, 웃음의 아리아)〉, 헝가리 귀족부인으로 변장한 로잘린데가 부르는 〈차르다스(Czardas)〉, 오르도프스키 공작이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며 부르는 〈샴페인의 노래〉 등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 하면 - 차이코프스키나 쇼팡 같은 음악가들도 있지만 - 왈츠의 왕으로 불리우는 요한 슈트라우스(1825~1899)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슈트라우스는 왈츠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듣고 있노라면 유럽 전역을 휘감아 흐르는 도나우 강 주변의 멋진 경치와 함께 르노와르의 그림처럼 우아한 왈츠의 선율에 맞춰 춤추는 멋진 남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1866년 옛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멍에를 쓰고 정치, 경제적으로 큰 압박을 받으며 암담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슈트라우스 II세는 무명시인 칼 베크가 쓴 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하게 되는데... 이 곡은 당시 의기 소침해 있던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오스트리아 국가 다음으로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칼 베크의 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괴로움에 허덕이는 그대를 보았노라
나는 젊고 향기로운 그대를 보았노라
마치 금광의 황금처럼
도나우 강 위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위에
진실이 되살아 나는 것을...
 
 슈트라우스 전기를 보면 당시 최고 인기스타로 군림했던 그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슈트라우스는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거품과도 같았다. 그의 혈관에는 샴페인의 거품이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빈에서는 슈트라우스의 곡이 모짜르트의 곡보다 더 자주 연주될 만큼 빈 시민들의 슈트라우스 사랑은 각별하다. '왈츠의 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슈트라우스는 무려 500여 곡에 이르는 왈츠와 폴카를 작곡했는데 그의 '7대 왈츠'로 손꼽히는 작품의 연대기는 다음과 같다

1.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1867)
2. 예술가의 생애 (1867)
3. 빈 숲 속의 이야기 (1868)
4. 술과 여자와 노래 (1869)
5. 남국의 장미 (1880)
 6. 봄의 소리 (1882)
7. 황제 원무곡 (1888)





Johann Strauss II  waltz

 

Künstlerleben (Artist's Life), Op 316     예술가의 생애 (1867)

Wiener Symphoniker,
Philippe Jordan

 

 

"Tales from the Vienna woods" Waltz Op. 325     빈 숲 속의 이야기 (1868)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Lorin Maazel

 

 

Wein, Weib und Gesang, Op.333     술과 여자와 노래 (1869)

Wiener Philharmonike
Zubin Mehta,

 

 

Rosen aus dem Süden, Op. 388     남국의 장미 (1880)

Leipzig/ Germany
Daniel Nazareth conducts

 

 

Frühlingsstimmen,(Voices of Spring). walzer op. 410      봄의 소리 (1882)

Symphony Orchestra of The Józef Marcin Żebrowski Music School 
Zygmunt Nitkiewicz - conductor

 

 

Kaiser-Walzer (Emperor Waltz) Op. 437     황제 원무곡 (1888)

 Wiener Johann Strauss Orchester 
Alfred Eschwé, Condu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