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Gondolier (곤돌라의 사공) - Dalida
Le Gondolier (곤돌라의 사공) Sung By Dalid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Gondolier t'en souviens tu Les pieds nus, sur ta gondole Tu chantais la barcarolle Tu chantais pour lui et moi Lui et moi tu te rappelles Lui et moi c'était écrit Pour la vie la vie si belle Gondolier quand tu chantai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Io ti amo con tutt il cuor Solo ate adorero E sappendo che tu mi ami Ti amero, mol ti di piu Cet air là était le notre Gondolier si tu le vois Dans les bras, les bras d'une autre Gondolier ne chante pa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Autre version] Dalida는 전후 프랑스 국민들의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대표적인 이태리계 미스 이집트 출신 여가수 |
Dalida 정관사를 붙여 ‘Le Gondolier’라고도 적는데, ‘곤돌라의 사공’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 미국의 파퓰러 송으로, 찬셀러 레코드의 부사장으로 있었던 이탈리아계의 미국인 피토 데 안젤리스가 1957년에 만들었다. 원제는 <With All My Heart>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샹송의 벗’의 멤버인 장브루솔(1920년, 생 바리에 쉬르 론느 태생)이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샹송으로도 대 유행했다. 수많은 가수가 다루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은 당시 팔리기 시작한 미모의 가수 달리다였다. 달리다의 본명은 요란다 질리오티라고 하며, 1933년 1월 17일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이탈리아인으로, 아버지는 카이로의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 주자였다. 그 관계로 그녀도 어린 시절부터 곧잘 오페라를 들었다. 예명인 ‘달리다’도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데릴라를 본뜬 것이다. 1951년부터 54년까지 그녀는 비서로 일했다. 1954년에 생각지 않던 기회가 찾아왔는데, ‘미스 옹딘느’(‘물의 요정’을 말한다)라는 미인 콘테스트의 광고를 보고 친구와 함께 응모하여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 상으로 「투탄카멘의 가면」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같은 해의 크리스마스날 밤 감독에게 이끌려 파리에 왔다. 영화는 완전한 실패작으로 거의 화제에도 오르지 않았으나, 그녀는 파리가 몹시 마음에 들어 이 도시에 머물러 노래로 입신하려고 결심했다. 그리고 롤랑 베르제라는 선생의 레슨을 받은 뒤 카바레 ‘빌라 데스트’에서 가수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이어서 ‘드랍 돌’과도 계약했다. 1956년 4월, 그녀는 감연히 올렝피아 극장에서 실시된 신인 오디션을 받았다. 그 당일, 극장 옆의 비스트로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남자와 만났는데, 그들이 버클레이 레코드의 사장 에디 버클레이와 당시 유럽 뉴메로 엥 방송국의 음악 디렉터를 하고 있었던 뤼시앙 모리스였다. 그들도 오디션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421번이라는 번호로 오디션을 받은 달리다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완전히 긴장했기 때문에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그녀를 주목한 모리스는 머클레이에게 권해 1년간 계약하게 했다. 이리하여 맹렬한 특별 훈련이 실시되고, 같은 해에 데뷔 음반 <Bambino>가 취입 되었는데, 이 곡의 원곡은 칸초네로서, 56년 나폴리 가요제의 우승곡 <Guaglione>였다. 이 곡이 대히트함으로써 달리다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 곡의 편곡과 반주 지휘를 담당하여 일약 이름을 떨친 사람은, 그 무렵 아직 무명이었던 레이몽 르페브르였다. <Ciao Ciao Bambina> 등의 히트가 거기에 이어졌다. 뮤직 홀에도 진출했는데, 1956년의 보비노 극장에 이어 57년에는 올렝피아 극장에 첫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59년에는 「뮤직 홀」지의 인기 투표에서 여성 가수 1위를 차지하면서 프랑스 파퓰러 음악계의 톱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또 ‘사랑 많은 여자’로서도 알려져 있는데, 길러 준 어버이도 할 수 있는 뤼시앙 모리스와는 1961년에 결혼했으나 얼마 후 파국을 맞이했고, 이어서 어떤 화가, 또는 줄리에트 그레코의 애인이었던 크리스티앙 드 마제르와이 로맨스로 떠들썩했다. 66년에는 이탈리아의 칸타우토레(가수 겸 작곡가)인 루이지 텐코와 알게 되어 서로 사랑했고, 67년의 산레모 음악제에서는 그를 파트너로 하여 그 작품 <Ciao Amore Ciao>를 불렀는데, 첫날 밤에 텐코가 권총으로 자살했고, 달리다도 한달 후에 자살을 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모리스도 자살하여 대단한 충격을 받았으나, 이윽고 멋지게 복귀하여 다시 잇따라 히트를 기록하며 훌륭하게 되살아났다. 1970년과 74년에는 동양 공연도 가졌다. 달리다 외에 많은 가수가 앞 다투어 취입했던 <곤돌리에>의 멜로디는 폴 미스라키가 만들고 장 뤼미엘이 초연한 1937년의 샹송 <Sur Deux Notes>와 아주 비슷하여 프랑스에서는 소송으로까지 발전했다. 가장 뛰어난 명창이 달리다였고, 글로리아 라소, 그밖에 자클린 프랑수아, 미셸 마테 등이 있다. 남성 가수로는 프랑수아의 남편이었던 앙리 데케르가 좋다. 앙리 살바도르는 익살스럽게 개작해서 부르고 있다. 합창으로는 샹송의 벗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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