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Nashville

[가요] 청춘 부라보 (1960)-도미

jubila 2024. 5. 11. 18:32

청춘 부라보 (1960)-도미










청춘부라보
(1960)


반야월 작사 / 박시춘 작곡
(영화"장미"의 주제가)

도미 
  
1.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단둘이서 바라보면은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정다웁게 걸어가면은
어드메서 들려오는 사랑의 노래
그 누구가 불러주는 행복의 노래
바람결에 쏟아지는 연분홍 테프
꽃잎처럼 날러서 온다네
청춘도 한때 사랑도 한때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부라보
 
 2.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사이좋게 바라보면은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도련도련 걸어 가면은
산새 들새 조잘조잘 노래 부르고
뭉게구름 둥실둥실 손짓을 하네
꽃도 푸른 꿈도 푸른 가슴을 안고
손에 손을 잡고서 가잔다
사랑도 한때 이별도 한때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부라보

3.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사이좋게   바라 보며는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도련도련   걸어 가며는
호랑나비 쌍나비가   춤추며 날고
비단같은 실 안개가 무지개 피네
푸른방초 밟고가는 발자국 따라
그대손을 잡고서 가잔다
정열도 한때   희망도 한때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부라보

4.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웃으면서 바라 보며는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그대함께 걸어 가며는
어드메서   날라오는 휘파람 소리
그 누구가 반겨주는   하소연 일까
아름다운 대자연의   숨쉬는 기쁨
향기로움 더하여   온다네
행복도 한때   인생도 한때
다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부라보















 

 




 

 







 





가수 도미(都美 : 본명 오종수 吳宗洙) 

 1934년 상주시 서성동에서 오세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1년 대구에 있는 대구극장에서 오리엔트 레코드사 주최한 제1회 전속가수 선발  경연대회 에, 당시 대구 계성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도미(都美)선생이 출전하여 방운아  (본명은 方昌萬)선생과 함께 입상(入賞)하였다. 

 평소 현인(玄仁)선생의 창법(唱法)과 노래 연기를 흠모했던 도미(都美)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가 무섭게 가수 현인(玄仁)을 발굴했던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선생을 찾았다.
이때 도미(都美)선생이 부른 노래는 현인(玄仁)선생이 불렀던 신라의 달밤  이었다고 한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박시춘 선생은 도미(都美)선생의 실력을 크게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야인초(野人草)
선생에게 작사(作詞)를 부탁하고, 본인은 작곡(作曲)을 해서 만든 신라의 북소리 를 도미(都美)선생에게 취입(吹入)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도미(都美)선생은 본격적으로 가수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가수 도미(都美)선생이 부른 노래는 약 60곡이며 이들 중에서 <청포도사랑>  <하이킹의 노래> <청춘브라보> <비의 탱고> <오부자의 노래> <사랑의 메아리>  <하이킹의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사도세자> <백마강>등 수많은 노래가  크게 힛트해서 지금도 우리들 가슴 깊숙이에 있다. 
 특히 1956년에 발표한 <청포도사랑>은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렀고,  그 무렵 전국에 있는 포도밭은 모든 연인(戀人)들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상주출신 가수로써는 전후후무한 힛트곡으로 우리나라의 톱 가수반열에 우뚝 섰었고, 
 1970년대에 연예협회(演藝協會) 이사장에 취임하여 역동적으로 일을 하다가 
 1984년 홀연히 미국 뉴욕으로 이민(移民)을 떠났다. 
 가수 도미(都美)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고국에 남아서 옛 추억을 더듬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도 불리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가수 도미(都美)가  부른 <청포도 사랑>이라는 노래가 입가를 맴돌고있다. 

 전국에는 약 40여 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정작 상주에는 현대 가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가 있는데도 그 흔한 노래비  하나없이 외면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 전문 가수를 선발하는 <삼백가요제>도 자리를 잡았고, 15년 동안 지켜왔던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가 대통령상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에 상주에는 문화향기가  서서히 돌고 있다.
여기에 도미(都美) 선생의 노래비를 더한다면, 상주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느는 셈이 되고, 특히 도미(都美) 선생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고향의  후인(後人)들에게는 큰 표상(表象)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