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옥상에서

2018년 5월 12일 오후 05:52

jubila 2018. 5. 12. 20:44

JY 야!

안녕!
오늘 주말은 화창한 계절의 5월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하늘의 심통으로 하루종일 궂은비가 내리는 구나.
요 몇달 동안 나는 생의 마지막 숙제를 마쳤단다.

당신을 가장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기간제 묘지가 금년으로 기간이 다되어 분장을 하여야만 하게 되어 있었단다.
그러면 어머님 산소를 파서 유해를 화장하여 납골당식으로 만든 묘역에 안치하게 된단다.

헌데,
문제는 지금 어머님의 산소와 아버님의 산소는 100m 남짓박에 안되어 다니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만약 어머님 산소를 분장하여
납골 묘역으로 모시면 용인 천주교 묘역은 국내 가장 큰 묘역으로 납골 묘역은 요즘 새로지은 곳으로 산의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어
아버님 산소를 찾았다 어머님에게 가려면 너무 멀고 힘들어 자식들이 가기도 힘들어 자칫 부모님들이 외로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끔찍한 생각마져 들었단다.

그래서 어머님의 생전의 소원이셨던 사후 아버님과의 합장을 실현해 드리기 위하여 이번 분장을 하면서 아버님이 계신 산소에 합장하는 것을 목표로 승부를 걸었단다.
아버지 묘역은 90년도 수해로 훼손된 유해를 모신 기념 묘역으로 주차장과 김수환 추기경 경당 바로 옆에 있어 용인묘역 최고의 자리이지만
기념 묘역이기에 누구도 들어 갈수가 없는 곳이란다.

하지만 내가 누구니?
승부사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비록 몸은 이럴지라도 부모님 사후를 힘들게 한다는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
긴시간을 이 불편한 몸으로 명동(묘지 관리국이 명동에 있어서,,,,), 용인을 수없이 오가면서 부탁을 드리고, 또 당시 수해시 명동의 동생들을 보내 수습작업을 도우라 했던걸 기억한 어느 담당 간부의 도움으로 불가능 했던 기적을 만들수 있었단다.

그 승인이 떨어진날, 하루종일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고 또 분장을 하는 날도,, 어머니와 당신생각을 하면서 흘리고,,,
그리고 또 아버님과 합장 할 때, 첫 흙을 뿌릴때도 기쁨의 눈물이 이 나이의 내눈에서 하염없이 흘러 내렸단다.

다 끝내고 그때서야 동생들을 불러 이야기 하니 "어떠케 그게 가능 했어요?" "그리고 혼자서 또 그 몸으로~~~~~"
하며 놀라며 기뻐들 하였단다. (어머니 분장일이 가까워 올수록 걱정들 많이 했으니~~~)

지영아,
이제 이곳에서의 내 마지막 일은 끝난거 같구나,
어머니 그동안  홀로 외로움에 많이 힘드셨을테니 그곳에서 많이 위로하여 드리렴,

아참,,
그곳에 나의 천국의 고향도 함께 준비해 두었단다,
조그만 내 사진밑에,


"아버님, 어머님, 저도 함께 있어요" 라고 적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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